대개 이런 식이다. 찰나의 각성이라는 씨앗에 용기라는 거름이 뿌려져 변혁을 이끌어내는 신념과 사상이라는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난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국제관계연구소 상임이사인 해리 크라이슬러가 1982년부터 진행하고 있는'역사와의 대화'는 명사들을 초청해 "오늘의 그(그녀)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묻는 대담 프로그램이다. 지난해까지 외교관, 정치인, 군인, 경제학자, 과학자, 작가, 환경운동가, 역사학자 등 475명과 대화를 나눴다.
는 그 중 20편을 엄선해 책으로 묶은 것으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진보적 지성들을 망라한다. 세계적 언어학자이자 미국의 패권주의를 꾸준히 비판해온 노암 촘스키, 흑인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의 기수였던 정치가 론 덜럼스, 생태운동가이자 환경 전문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폴란, 중동의 인권변호사이자 이슬람 여성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시린 에바디, '7월 4일생', '플래툰' 등 반전주의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 등이 그들이다. 대담 시기는 97년부터 2007년까지다.
민권운동, 반전운동, 환경운동, 문화운동 등 걸어온 길은 제각각이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는 공통분모로 이들은 묶인다. 크라이슬러가 이들로부터 각성의 계기를 털어놓게 하는 과정은 결국 인간에 대한 애정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질문하는 과정이다.
올해 초 타계한 미국의 민중주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엘리트 중심인 미국의 주류 역사관, 주류 이데올로기에 반감을 품게 된 때는 유년시절이다. 유대인 이민자 집안 출신인 그는 누구 못지않게 근면한데도 생활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부모를 떠올린다. "열심히 일하면 출세한다는 신화에 대한 정확한 반증이었던 셈이죠. 이런 경험이 경제 체제가 불공정하다는 제 느낌을 강화해줬다고 봅니다." 책의 영향도 있었다. 독서를 즐기는 가풍은 아니었지만 부모가 선물해준 찰스 디킨스 전집을 읽은 것이 근대산업체제의 모순을 깨닫고 디킨스식 계급의식을 형성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대니얼 엘스버그는 1970년대 반전운동의 기수다. 미국 정부의 베트남전 관련자료를 취급하는 연구원이었던 그는, 북베트남군의 선제공격 때문에 참전하게 됐다는 미국의 주장이 허위임을 입증하는 기밀문서들을 공개해 반전여론을 확산시켰다. 기밀문서 공개는 체포와 수감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그는 양심적 병역 거부로 감옥에 간 한 젊은이를 만난 뒤 용기를 냈다고 한다."저는 우리가 우리의 젊은이들을 잡아먹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식인종보다 더 나쁜거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아이들을 잡아먹고 있는 거니까요."
각성의 순간이 있었다고 해서 누구나 투사가 되는 건 아니다. 진실에 눈을 뜬 뒤 이들은 정치적 행동으로 각자의 신념을 실천했다. 그럴 수 있었던 힘의 비밀은 무엇일까.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기꺼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론 덜럼스), "다른 사람과 힘을 합쳐야 한다"(노암 촘스키), "우리의 개인적 체험과 사회 사이의 연관을 찾아야만 한다"(오에 겐자부로) 같은 구절들에 단서가 숨어 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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