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신승엽(27)씨의 취미는 사진촬영이다. 시각장애와 사진. 사진촬영이 눈으로 사물을 보아야 할 수 있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둘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신승엽씨에게는 꼭 그렇지가 않다. 그는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사물을 살피고 거기에 의미까지 담아 사진으로 표현한다. 상명대 영상ㆍ미디어연구소가 22일부터 28일까지 서울 대학로 상명대예술디자인센터갤러리에서 '마음으로 보는 세상, 마음으로 보는 서울'이라는 제목으로 개최하는 전시회에, 신승엽씨를 포함해 약하게나마 시력이 남아있는 다섯 명과, 아예 세상을 볼 수 없는 또 다른 다섯 명 등 모두 열 명이 그 동안 촬영한 작품을 선보인다.
제대 후 생긴 시각 이상으로 2, 3m 앞 간신히 알아봐
신승엽씨를 만난 곳은 경기 고양시 탄현동에 있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일산직업능력개발원이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취업교육을 하고 일자리도 알선하는 기관인데 그는 7월 중순부터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 그가 배우는 것은 컴퓨터와 관련한 것이다. 전공이 수학이지만 부전공으로 컴퓨터공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지식도, 관심도 있는 분야다. 장애인이나 노인 등이 인터넷에 얼마나 쉽게 접근하는지를 평가하고 그들을 위한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방법 등을 배우는데 나중에 그쪽 분야에 취업을 하려고 한다.
현재 그의 눈은 2, 3m 앞에 사람이 있는지 여부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다. 설령 그 곳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그의 얼굴이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이것도 최근에 나아진 것이어서 3년 전만해도 1.5m 범위 안에 있어야 사물을 인지할 수 있었다.
군대도 갔다 왔을 정도니까 그의 시력이 원래 나빴던 것은 아니다. 불과 4년 전 그러니까 제대 직후인 2006년 봄 갑자기 이상을 느꼈다. 처음에는 사람의 미간에 하얀 점 같은 것이 보이더니 그것이 점점 커져 얼굴의 가운데 부분이 다 하얗게 보였다. 그때쯤부터는 영문 알파벳 i와 l도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병원에서는 시신경에 이상이 생겼으며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별의 별 방법을 다 찾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낙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물의 중심부가 잘 보이지 않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정면의 한 가운데에 초점을 맞추기 어렵다는 뜻이다. 대신 중심부를 둘러싼 바깥 부분은 약간 보이는데 그 때문에 한동안 사람이든, 사물이든 옆으로 흘끗 쳐다보아 공연한 오해를 사기도 했다.
글씨는 컴퓨터를 통해 손가락 두 마디 크기로 확대해야 볼 수 있는데 그렇게 키운 글씨를 읽기 위해서는 신경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오래 들여다보기가 어렵다. 가운데 부분이 흐리게 보이니 옥을 윽으로 읽는 등 글씨를 잘못 볼 때도 있다.
그 상태에서 복학을 했더니 학교 생활에 불편이 많았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 집에서 학교가 있는 천안까지 가는 것이 우선 문제였는데 그래도 천안역에 도착하면 후배들이 나와 도와주었다. 후배들의 강의노트를 빌려 탁상용독서확대기로 공부를 했다. 교수님들은 그를 따로 불러 구두로 시험을 보는 등 편의를 봐주었다. 그래도 시력에 이상이 생긴 그가 올해 2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겪은 고충은 한 둘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함께 한 여행 통해 사진에 빠져
그는 제대 후 시력에 이상이 발견된 뒤 대학에 복학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과 가까운 복지관에서 점자, 보행법 등을 익혔다. 그러다가 2008년 봄 복지관에서 사진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놀러 갔을 때, 기념식 날 등에 똑딱이 카메라로 찍은 적이 있었지만 마음 먹고 촬영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 그가 사진을 배우기로 한 이유는 단순했다. 거리에서 그에게 카메라를 건네며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젊은이들이 가끔 있었는데 그들에게 시력이 나빠 촬영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게 싫었던 것이다. 그는 "그때 음성으로 안내, 지시하는 시각장애인용 휴대폰이 있었는데 카메라도 시각장애인용이 별도로 있는 줄 알고 그 방법이나 한번 익히자는 단순한 마음에서 사진을 배우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각장애인용 카메라는 따로 없었다. 그때 그에게 사진촬영법 등을 가르친 이가 한상일씨다. 현재 상명대 강사로 있는 그는 이번 전시회에 신승엽씨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권했다.
그렇다고 그가 처음부터 사진에 푹 빠진 것은 아니다. 얼떨결에 시작은 했지만 보는 것이 불편한 그로서는 부담이 컸다. 그러다가 2008년 여름 아버지와 둘이서 여행을 떠난 것이 사진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아버지는 집에 박혀 있는 아들이 안타까웠던지 전남 신안군에 있는 홍도로 여행을 가자고 했고 신승엽씨는 거기에서 찍기 위해 카메라를 새로 장만했다. 카메라 구입에 들인 돈이 아까워서라도 여행 길에 사진을 많이 찍기로 했는데 그런 마음을 아는지 아버지 역시 그에게 홍도의 경치를 많이 담으라고 했고 아들이 촬영한 사진을 보며 잘 찍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약한 눈으로 사진을 찍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별도의 촬영 비법도 물론 없다. 촬영의 기본 방법을 바탕으로 그만의 조그만 요령을 더했을 뿐이다. 가령 꽃잎을 찍기로 하면 손으로 만져 잎의 앞 뒤를 구별한 뒤 렌즈를 들이댄다. 사람들의 대화, 차가 오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등을 듣고 그쪽으로 카메라를 돌린다. 색상 구별이 어렵지만 그래도 누군가 꽃의 종류를 말해주면 색상을 어느 정도 짐작하며 촬영을 한다. 그렇더라도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원경은 피하게 되며 사진도 단순해진다.
기쁨, 슬픔 등 감정과 의지를 담은 사진 찍고파
그가 주로 찍는 것은 사람, 꽃, 그림자 등이다. 사람이라도 전신보다도 손, 다리, 귀 등 신체의 일부를 즐겨 찍는다. 그림자는 명암 구별이 잘되는 것을 자주 촬영한다. 명암 구별이 약하면 찍기가 어렵다. 노출은 카메라를 반자동 상태에 두고 조리개 등을 어렵게 나마 조작하며 맞춘다.
물론 어려움은 많다. 사물의 중심부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 얼굴을 잘라먹거나 사람을 구석에 집어넣는 경우가 많다. 또 초점을 맞추지 못할 때가 많으므로 한 장면을 여러 컷 찍어 그 중 상태가 좋은 것을 선택한다.
화면을 누르면 음성으로 설명이 나오는 신승엽씨의 휴대폰에는 그가 촬영한 사진 몇 장이 들어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튤립이다. 렌즈를 봉오리 안으로 집어 넣어 찍은 사진인데 시력에 이상이 없다면 굳이 봉오리 안에 렌즈를 넣어 촬영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주위 사람들이 잘 찍었다고 칭찬해주어 사진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고 튤립사진에 대해 말했다.
전철 안에 있는 손잡이를 손으로 쥔 사진도 저장돼 있다. 손잡이를 꽉 쥐듯, 세상을 끝까지 버텨보자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유치원 아이들의 다리를 찍은 사진도 있는데 이것은 시각장애인이 된 뒤 행동이 조심스러워지면서 그렇게 뛸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동생의 귀도 사진으로 찍었다. 눈에 이상이 생긴 뒤 새삼 청력의 고마움을 느끼면서 촬영한 것이다. 안양시 범계동 번화가의 밤 풍경을 찍은 사진은, 시각장애가 된 뒤 저런 곳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는 답답한 심경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실제로 시력이상이 온 뒤 많은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다. 이런 신승엽씨의 사진에 대해 한상일씨는 "나름의 느낌과 생각이 들어있다"며 "사진으로서 제법 수준이 있다"고 평가했다.
신승엽씨는 사진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고 말한다. '나를 담는 그릇'이라고 사진을 정의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경쾌한 셔터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카메라를 들면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사진이 잘 나올까, 내 생각이 반영됐을까, 혹시 작품사진이 되지는 않을까 등 여러 기대를 안고 셔터를 누르기 때문에 늘 마음이 설렌다.
그는 취업, 결혼 등 자신의 여러 계기를 특히 사진에 담고 싶다. 거기에 기쁨, 슬픔, 아쉬움 등 감정도 넣고 싶다. 가로든, 세로든 얼굴의 절반과, 문 손잡이도 지속적으로 찍고 싶다. 얼굴의 나머지 절반을 살아가면서 채우겠다는 의지와, 손잡이를 열고 사회로 뛰쳐나가겠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그는 사진을 배운 뒤 지금껏 2만장 이상을 촬영했다고 말한다. 올해 들어 새로 장만한 디지털 카메라로만 6,000장 이상을 찍었다. 다행인 것은 사진 촬영을 시작한 뒤 시력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사실 그것이 꼭 사진 때문인지는 입증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어쨌든 눈이 좋아졌다고 느끼고 있다. 병원에서는 시력이 좋아질 확률이 4%에 불과하다며 그의 시력 개선이 아주 드문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신승엽씨는 "사진 때문에 자신감이 생기고 시력까지 개선됐다"며 "앞으로는 사진 촬영을 하며 눈을 더 혹사시켜야겠다"고 웃으며 말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찍은 사진을 모아 나중에 작은 전시회를 여는 게 그의 소박한 소망이다.
박광희 편집위원 kh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