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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이 다시 온다/ 기고 - 파란만장한 生서 피어난 마술같은 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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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이 다시 온다/ 기고 - 파란만장한 生서 피어난 마술같은 美

입력
2010.11.1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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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역경을 거친 노인의 표정이 어린아이처럼 밝고 순수하다면? 좋아하다 못해 경외감마저 느끼게 될 것이다. 마르크 샤갈의 그림을 보면 이런 느낌이 절로 든다.

샤갈은 1887년 러시아의 변방 비테프스크의 유대인 빈민촌에서 9남매의 맏이로 태어났다. 동네 미술학원에서 자신의 꿈을 키우던 샤갈은 마침내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에서 회고전까지 갖게 되었다. 그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니스의 국립마르크샤갈미술관에 직접 가보면, 러시아의 한 무명 작가가 콧대높은 프랑스에서 열광적으로 추앙받기까지 그 예술적 성취를 온전히 확인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이 자연스레 연상되는 역전의 삶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인간승리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작업이 담아내는 창의성 때문이다. 샤갈은 꽃다발과 날아다니는 연인들, 지붕 위의 바이올린 연주자, 우화적인 동물들, 감성적 어릿광대, 성서의 예언자 등의 환상적인 주제를 화려한 색과 특유의 자유로운 붓질로 묘사했다. 그는 입체주의, 야수주의, 표현주의 등 당시의 경향을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독자적 표현양식을 고수했다. 감성의 직접적 표출, 대담한 색채, 신비적이고 상징적 특성과 함께 이성을 넘어서는 상상력의 과감한 표현이 샤갈 작품에서 살아 움직인다.

고향에 대한 끊임없는 향수, 지적이고 아름다웠던 아내 벨라에 대한 애틋한 사랑, 그녀를 갑작스레 여의어야 했던 상실과 애도, 나치의 유대인 학살, 뉴욕과 파리 등지에서의 오랜 망명생활, 미술계의 갈등과 배신의 상처 등 인간의 희로애락이 샤갈의 회화에서는 무척이나 밝고 몽환적인 색채로 승화되어 나타난다. 인자한 노인의 환한 미소처럼.

샤갈은 당시 서구 미술이 눈에 보이는 가시계의 시각적 탐색에 몰두한 것과 달리, 인간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 무렵 서유럽 화단은 이성적, 분석적 아방가르드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샤갈은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닌 의식 너머의 세계를 탐색했다. 이성과 추상으로 치닫던 서구의 모더니즘과, 무의식 및 충동을 탐구하는 초현실주의와, 정신분석의 부상 사이에서 그만의 독자적인 위치를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대표적 시기인 1910년대 샤갈의 회화에는 옛 추억의 장소, 사랑하는 아내 벨라 등 자전적 삶의 이야기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 인간 내면의 심리와 정신을 표현해 내는 미적 시도였다. 그는 말했다. “우리의 모든 정신세계는 곧 현실이다. 그것은 아마 겉으로 보이는 세계보다 훨씬 더 진실할 것이다.”

샤갈의 이러한 미적 개성은 작가로서 뛰어난 감수성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꿋꿋이 밀고나간 그의 놀라운 생존력과 감동적인 성실함이 있었다. 또한 문화적 교류가 큰 몫을 했다는 사실을 특히 잊지 말아야 한다. 그의 회화에서 러시아의 민속적 모티프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제2의 고향인 프랑스의 문화 속으로 자연스레 녹아들어 자신만의 독창적 시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술 속 문화의 만남과 융합이야말로 요즘을 사는 현대미술가들을 향한 샤갈의 소중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전영백ㆍ홍익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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