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한국의 서울과 부산에서 열린 샤갈 회고전에 70만명의 사람들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작품이 먼 나라에서 그토록 사랑받고 있다는 건 정말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같은 제목의 전시가 또 열린다니 너무 기쁘고, 이번에는 꼭 한국에 가보고 싶네요.”
12월 3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하는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을 앞두고 마르크 샤갈(1887~1995)의 외손녀이자 파리 샤갈재단 부이사장인 메레트 메예르(55)씨를 만났다. 샤갈재단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이번 전시에 대해 “미술관들이 빌려주기 꺼려하는 굉장한 작품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전시”라며 큰 기대감을 표했다.
메예르 부이사장은 샤갈과 첫 부인 벨라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딸 이다 샤갈의 1남 2녀 중 장녀다. 이다는 어머니 벨라와 더불어 샤갈의 예술세계를 지탱하는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했다. 메예르 부이사장의 아버지 프란츠 메예르는 스위스 베른미술관장을 지낸 미술사가로, 특히 샤갈 연구로 이름이 높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성장하고 독일에서 문학을 공부한 메예르 부이사장은 1997년부터 샤갈재단에서 일하며 할아버지의 작품세계를 알리고 지켜나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샤갈은 어떤 할아버지였을까. 메예르 부이사장은 “보통 할아버지들처럼 손녀에게 사탕을 주거나 같이 놀아주는 분은 아니셨다. 덕분에 지금도 튼튼한 치아를 갖고 있다”고 농담을 하며 밝게 웃었다. 그에게 샤갈은 할아버지로서보다 위대한 예술가의 모습으로 각인돼 있었다. “어린 시절 스위스에서 살았지만, 매년 7월 7일 할아버지의 생일이면 생폴드방스의 집을 찾아가 함께 보내곤 했습니다. 예술에 대한 할아버지의 열정과 집중력은 대단했습니다. 밥을 먹다가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 작업실로 가버린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가족들은 그런 일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샤갈이었으니까요.”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에 나오는 작품 리스트를 훑어보던 그는 샤갈의 1927년 작품 ‘두 얼굴의 신부’의 사진을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어린 시절 집 거실에 걸려있던 그림이라 특별히 애착이 간다. 파리, 스위스 등 가는 곳마다 어머니가 늘 간직했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한 손에는 꽃을, 한 손에는 부채를 든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을 담은 ‘두 얼굴의 신부’는 샤갈이 아내 벨라에게 바치기 위해 그린 것이다.
메예르 부이사장은 또 7점의 ‘유대인 예술극장 장식화’에 대해 “오늘날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1920년 모스크바의 유대인 극장 내부 장식화로 제작된 이 작품들은 스탈린 집권 후 창고에 방치돼있다가 1973년 극적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는 “이 7점은 별개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고 있기에 반드시 한꺼번에 봐야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샤갈의 작품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살아 숨쉬는 듯한 색채를 통해 사람들이 인생을 새롭게 바라보고 꿈을 꿀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비극적인 역사를 고스란히 겪으며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그는 작품에 결코 절망이나 좌절의 그림자를 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림을 통해 희망을 찾았죠. 한국의 관람객들이 샤갈의 그림을 통해 평화를 얻기를, 새로운 세계로 가는 창문을 발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파리= 글ㆍ사진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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