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만인가/ 다시 백두산 정수리 새벽에 올라/ 몇해 만인가 속 깊이 우짖어/ 남김 없이/ 내 빈 발걸음 터벅터벅 내려간다/ 내려가/ 삼지연 백두영봉 그림자를 오롯이 맞이한다/ 아니 둘이 아닌/ 하나의 삶 그것을 낳고야 말/ 햇빛 부신 하루를 맞이한다…’
시인 고은의 ‘다시 백두산에서’ 중 일부다. 아이슬란드와 인도네시아의 잇따른 화산 폭발로 최근 백두산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통일부에선 대북정책으로 백두산 화산폭발 문제를 검토 중이다. 이에 앞서 지난달 27∼30일 경주에서 열린 대한지질학회 추계학술발표회에선 백두산 폭발을 둘러싸고 흥미롭게도 상반된 연구결과가 나란히 발표됐다.
“화산성 지진과 지표 이동 분명”
윤성효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와 이정현 부산대 과학교육연구소 교수 공동연구팀이 백두산의 뚜렷한 분화 징후로 제시한 건 화산성 지진과 위성항법장치(GPS) 데이터다. 땅속에서 균열이 일어나면서 생기는 보통 지진은 구조성 지진, 마그마가 솟아오를 때 생기는 진동으로 일어나는 지진은 화산성 지진이라고 불린다. 연구팀은 중국 국가지진국 천지화산관측소에 1999년 설치된 지진계가 2002년 7월부터 최근까지 한 달에 최고 260여회에 달하는 화산성 지진을 포착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구조성과 화산성 지진은 지진파 양상이 다르다”며 “특히 2005년 말까지 화산성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다 2007년부터는 약간 주춤해진 상태”라고 말했다. 천지 주변 암석 틈새를 따라 일부 수목이 고사되고, 천지 주변 온천수의 수온이 최대 83도까지 증가한 것도 뜨거운 화산가스의 영향일 거라는 추측이다.
연구팀은 또 중국 GPS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02년 8월부터 1년 동안 천지 북쪽 지형이 수평과 수직 방향으로 45∼50mm 이동했다고 발표했다. 윤 교수는 “이 정도 이동이 계속 누적되면 수년 이내에 분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2007년부턴 움직임이 조금 둔해지긴 했지만 뚜렷한 분화 징후임에 틀림 없다는 것. 화산이 분화하기 전 지하에 있던 마그마가 상승하면 압력이 낮아져 부피가 팽창한다. 이 때문에 마그마 위쪽 지표가 아래위나 양 옆으로 이동하며 서서히 부풀어오르게 된다.
“오차 범위 내 이동은 무의미”
김상완 세종대 지구정보공학과 교수와 원중선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문우일 캐나다 매니토바대 지구물리학과 교수 공동연구팀은 2006∼2010년 일본 레이더위성(ALOS)에서 얻은 데이터를 분석했다. 2009년 초까지 천지 동쪽 지표가 2∼3cm 올라왔으나 그 뒤부터는 천지 주변이 오히려 조금씩 가라앉았다. 이를 종합하면 지표가 뚜렷하게 상승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연구팀의 결론이다.
김 교수는 “또 다른 레이더위성(JERS-1)에서 1992∼98년 얻은 데이터에 따르면 천지 부근 지표가 1년에 약 3mm 솟아올랐지만 관측오차(2.2cm)보다 작은 무의미한 수치이기 때문에 명확한 분화 징후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보통 화산이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지표 이동이 수mm가 아니라 수십 cm씩 관측된다는 것.
김 교수팀의 레이더위성과 윤 교수팀의 GPS는 데이터를 얻는 방식이 다르다. 레이더위성은 위성이 쏜 신호가 지표에 도달하는 거리를 잰다. 여러 대가 각각 잰 거리의 차이를 통해 지표 변화를 나타내는 2차원 영상을 얻는다. 절대관측이 아니라 상대관측이다.
이에 비해 GPS는 설치된 지점에서 수직과 수평 방향 변화를 직접 측정해 3차원 영상을 만든다. 절대관측이지만 GPS를 가능한 많이 설치해야 의미 있는 데이터를 얻는다. 중국이 천지를 포함해 백두산 주변에 설치한 GPS는 현재 10여대로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천지 주변의 지표 변화를 정확히 계산하려면 지금까지 나온 GPS와 레이더위성 데이터를 종합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리랑 5호로 천지 관측 기대
폭발 징후를 둘러싼 분석은 엇갈리지만 일단 폭발하면 그 위력만큼은 대단할 거라는 점에 대해선 많은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약 1,000년 전 분화 당시 규모로 보면 백두산의 화산폭발지수(VEI)는 7.4다. VEI가 8이면 ‘슈퍼화산’이라고 불린다. 최근 분화한 아이슬란드 에이야프얄라요쿨화산은 4 정도다. 윤 교수는 “아이슬란드 폭발 땐 화산재를 비롯한 분출물이 약 0.1cm3만큼 퍼졌는데, 백두산이 폭발한다면 이보다 100배는 더 넓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천지 아래에 있는 마그마는 다른 화산지역에 비해 점성이 높고 유동성이 적어 쉽게 분출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때문에 폭발력은 더 세진다. 엄청난 힘이 차곡차곡 쌓이다 한번에 터지기 때문이다. 폭발로 튀어나온 화산재가 하늘로 올라가 편서풍을 타면 지구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제라도 우리 독자적으로 백두산 모니터링을 시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받을 수 있는 데이터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국내 학자들은 구름 낀 날이나 야간에도 촬영이 가능한 관측영상레이더를 싣고 올라갈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 5호에 기대를 걸고 있다. 김 교수는 “아리랑 5호 레이더에서 얻는 신호 중 나뭇잎 같은 산지 식생에 부딪혀 변형되는 부분을 제거하면 천지 부근 지표 변화를 정확히 판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리랑 5호는 2011년 6월쯤 발사될 예정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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