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가에 다크서클이 깊은 오랜 친구에게 음반을 줬더니 듣고 나서 담배를 찾았다. 어느 곡, 어느 부분이 친구의 니코틴 욕구를 건드렸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데가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 “말하진 않았지 ‘위로가 되기를’ 이런 말은 왠지 너를 그냥 지나쳐 버릴 것 같아서”(‘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치렁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친구는 작게 탄식했다. “아! 브로콜리, 늬들마저….”
모던록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가 2집 ‘졸업’을 발매했다. 홍대 앞 인디 밴드로는 기록적인 판매고(3만장)를 올린 1집 ‘보편적인 노래’(2008)를 내고 2년 만이다. 1집의 보컬 계피가 빠지고 나머지 네 멤버(덕원, 향기, 잔디, 류지)가 작업했는데, 노래를 감싼 사운드가 한층 두터워지고 채도가 짙어졌다. 인트로(‘열두 시 반’)부터 아웃트로(‘다섯 시 반’)까지 수록된 11곡의 엮음새도 단단하다. 하지만 이들이 그려내는 20대의 감성, 그 풋풋한 상실감은 여전히 항아리에서 갓 떠낸 감식초 맛이다.
“1집 때는 무척 급하게 앨범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멤버들이 다른 일 하면서 짬짬이 시간 내 연습하고 녹음했고. 당시 일을 봐주던 회사가 소위 홍대 스타일의 샤방샤방함을 원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번엔 사운드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했어요. 반복해서 토론하고 연습하고. 전엔 사운드보다 노래가 살아났다면, 이번엔 사운드 전체를 하나하나 쌓는 작업이었달까요.”
아마추어적 면모가 매력이었던 브로콜리 너마저는 이제 전업 밴드다. 01학번부터 04학번까지로 구성된 멤버들은 주 5일 상도동 장승배기역 근처 지하 연습실로 출근(오후 2시)했다 퇴근(대중 없음)한다. 소속사도 없이 ‘스튜디오 브로콜리’라는 자체 레이블을 꾸려 밴드 활동에 일로매진 중. “먹고 살 만하냐”고 묻자 간호사 출신인 잔디(키보드)는 “먹고는 산다”며 미소지었다.
“나는 밴드보다 레이블을 먼저 시작해서 그런지, 음반을 만드는 것도 창작의 연장이라고 생각해요. 오랫동안 밴드를 하려면, 그리고 온전히 브로콜리의 음악을 해나가려면 우리 스스로 프로듀싱까지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좀 바쁘고 힘들더라도. 사운드적인 실험을 포기하고 싶진 않거든요.”(덕원)
20대, 브로콜리 너마저의 음악은 아직은 생에 서툴러 여기저기 긁힌 가슴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그 아련한 청춘들을 위한 음악이다. “아직 잠에서 덜 깨 내일이면 모든 게 끝날 듯 짝짓기에 몰두하는” 20대가 아니라 “그 어떤 신비로운 가능성도 희망도 찾지 못해 방황하는”(‘졸업’) 20대. 노랫말을 쓴 덕원에게 그 감성의 시원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덕원은 “그건 밴드의 공동 작업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난 내 일상에서 가사를 찾지 않아요. 오히려 개인적인 감성으로 비칠 수 있는 부분들은 밴드가 멜로디를 다듬는 과정에서 덜어내는 편이에요. 좀 더 단순하고 간결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럴수록 듣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환기되는 부분은 커지는 것 같아요. 작업하면서도 감정이입이 잘 되는 것 같고.”
타이틀곡 ‘졸업’에서 브로콜리 너마저는, 다소 느꺼운 ‘뽕기’로 들릴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구절을 반복해 부른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그 애절한 소리는 위로가 아니라 같이 아파하는 절규로 들린다. 20대뿐 아니라, 가슴 한 구석 소금밭을 지닌 모든 이에게 빠르고 넓게 전염되는 당부. 그래, 모두들 부디 행복하기를. 눈 밑 다크서클을 감출 순 없더라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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