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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마라톤 400회/ 우리나라 '걷는 마라톤' 효시… 120만명이 33년간 2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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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마라톤 400회/ 우리나라 '걷는 마라톤' 효시… 120만명이 33년간 2793㎞

입력
2010.11.1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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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셋째 일요일 아침 남산의 상쾌한 공기를 가르며 33년간 서울 시민들의 ‘걷기 동무’가 돼 온 ‘한국일보 거북이마라톤대회’가 21일 400회를 맞는다.

거북이마라톤은 우리나라 걷기운동의 시원(始原)이다. 1978년 5월 21일 첫 대회가 열릴 당시 뛰고 달리는 대회는 있었지만 국내에 ‘걷는 마라톤’ 대회는 개념 조차 없었다. 이 때문에 한국일보는 거북이마라톤 첫 행사를 알릴 때 “이 마라톤은 뛰는 대회가 아니라 걷는 보행대회이며, 바쁜 시민이나 운동할 기회가 적은 시민들도 서로 어울려 자연스럽게 참가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고 취지를 설명해야 했다. 초창기 참가자 중 일부가 마라톤으로 착각하고 마구 달려 규칙위반 주의를 받는 해프닝이 있을 정도였다.

거북이마라톤이 33년 동안 꾸준한 인기를 받는 비결은 부담이 없으면서 심신 건강에 가장 효과가 큰 걷기운동이라는 점이다. 그 덕에 거북이마라톤은 지난달까지 399회 대회를 치르면서 누적 거리 2,793㎞, 참가 누적인원 120만명의 대한민국 간판 걷기대회로 자리매김했다.

행사 규모는 커졌지만 대회 진행은 출범 당시의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 ‘대회 일시는 매달 셋째 일요일 오전 9시, 코스는 국립극장 앞 출발→남산순환도로→식물원 앞→팔각정→국립극장 앞, 참가자격은 시민 누구나.’1회 대회 때 한국일보 사고(社告)에 나간 출발시간(오전 9시)이 2000년대 들어 오전 7시(하절기) 또는 오전 8시(동절기)로 앞당겨졌을 뿐 나머지는 그대로다.

남산순환도로를 따라 걷는 대회코스 7km는 주변 환경이 쾌적할 뿐 아니라 평지,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3분의 1씩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감성 순화와 운동 효과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도심 최적의 산책길이다.

처음부터 문호를 활짝 열었던 덕분에 거북이마라톤 길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시민 모두가 이웃처럼 어우러지는 훈훈한 화합의 장이 됐다. 그 동안 역대 대통령 영부인을 비롯한 정ㆍ관ㆍ재계 인사들과 유명 연예, 체육인들이 일반시민들과 자연스럽게 교감을 나눴다.

이명박 대통령 등 역대 명예대회장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91년 2월 영하 20도의 혹한에 치러진 164회 대회에 명예대회장으로 참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7km 전구간을 완주했다. 당시 기분이 좋아진 정 명예회장은 참가자들 앞에서 “여기 나보다 선배는 없을 걸”이라며 말했다. 이때 장난기가 발동한 사회자 이상용씨가 “정 회장(당시 76세)님 보다 나이가 많은 분은 주민증을 들고 나와 보시라”고 하자 20여명이 단상에 올라왔다. 그 때 정 명예회장과 동갑이던 한 참가자는 혹한 속에서도 반바지에 러닝셔츠 차림이었다. 정 회장은 한동안 말을 잃었고, 대회 후 20여명의 노인들에게 따끈한 설렁탕을 대접했다.

1990년대 초 서울시 전 구청장들이 참가했을 때는 2만 명이 넘는 참가자가 운집하기도 했다.

화제의 인물들도 쏟아졌다. 대회 15주년을 맞은 해인 1993년 191회 대회에는 당시 84세인 최사용 옹이 첫 회부터 한번도 빠지지 않고 개근해 특별선물을 받았다. 대회 20돌인 1998년 251회 대회에선 아들 손자 3대와 10년을 하루같이 참여해온 당시 89세의 김유찬 옹이 축하를 받았다. 1980년 10월18일 대회에서는 일본 걷기대회 회원들이 단체로 현해탄을 건너와 ‘남산 행렬’에 합류했다. 1978년 6월에는 대회에서 행운의 TV 수상기를 받은 김천석씨가 한국소아마비 아동보육협회에 이를 기증하는 선행을 펼쳤다.

400회를 맞는 한국일보 거북이마라톤은 33년 전 첫 발걸음을 떼던 설렘을 그대로 간직한 채 500회, 600회를 향한 또 다른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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