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뚝심이 일을 냈다.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절대 불리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현대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데는 현 회장의 적극성과 저돌적 추진력, 결단력이 결정적 이유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현 회장은 어느 기업 총수보다도 현대건설에 대해 적극성을 보였다. 2006년 채권단의 현대건설 매각 움직임이 처음 감지됐을 때 현 회장은 이미 계열사 지분 정리에 나서는 등 인수전 참여 준비를 마쳤다. 2009년 신년사에서도 현대건설 인수를 그룹의 첫 번째 과제로 제시했다. 이번 인수전에서도 인수 의사를 가장 먼저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현대그룹이었다.'현대건설은 우리 것이니 손대지 말라'고 끊임없이 상기시켜 왔다는 얘기다.
금융권과의 정면승부도 마다 하지 않았다. 현 회장은 지난 7월 채권단이 재무구조개선약정의 체결을 요구하자 "주채권은행을 변경하겠다"며 강경 대응했다. 채권단과 약정을 맺게 되면 그룹의 자금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게 돼 현대건설 인수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 그는 채권단이 현대그룹에 대해 신규대출 중단 등 제재를 가하자 법원에 "부당한 조치"라며 소송과 가처분신청을 내는 강수를 뒀고, 결국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산 넘어 산이었다. 간신히 채권단의 압박을 뿌리친 현 회장을, 이번에는 시아주버니인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이 막아섰다. 현대차는 당초 현대건설 인수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지난 9월말 돌연 인수전 참여를 선언했다. 현대차는 기업규모와 자금 동원력 등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 강적. 여기에 청와대와 정치권 일각에서 현대차의 현대건설 인수를 선호한다는 소문까지 나돌면서 현 회장의 고민은 커져만 갔다.
현 회장은 여기서 또 한번의 결단을 내렸다. 신문과 TV를 통해 대대적인 광고 공세를 편 것. 수위도 높았다. 현대그룹은 현대차의 '아픈 구석'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네거티브'전략을 썼다. 자칫 역풍이 불 수도 있는 민감한 전략이었지만 현 회장은 그대로 밀고 나갔다.
가장 큰 결단은 역시 마지막 단계에서 내려졌다. 현 회장은 기껏해야 4조원 정도로 평가됐던 현대건설 입찰액으로 5조5,000억원을 써냈고, 이는 이번 인수전의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로써 현 회장은 2001년 채권단의 손에 넘어간 현대건설을 9년 만에 되찾게 됐다.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건설을 살리려 동분서주하던 와중에 사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 회장의 감회는 더욱 새로울 것으로 보인다. 핵심계열사인 현대상선 지분 8%를 보유한 현대건설이 현대ㆍ기아차로 넘어가는 것을 저지하는 데도 성공, 그룹 지배력도 한층 공고히 하게 됐다. 이번 인수전에서 보여준 현 회장의 역량과 함께, 현대건설 인수가 마무리될 경우 그룹 규모도 재계 14위(지난해 말 기준 자산규모 22조2,000억원)로 올라서게 돼 현 회장의 재계 위상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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