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ㆍ29 대책이요? 그게 뭐죠? 옛날이랑 달라진 건 없는데요. 피부로 와 닿지 않아요."(경기 안산시 목내동 주물업체 사장)
"대통령이 몇 번 뭐라 한 뒤 대기업 결제가 한번 빨리 나온 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 변화는 없어요."(인천 남동구 논현동 부품공장 대표)
"원래 상생이니 동반성장이니 하는 것이 정권 후반기 단골 메뉴 아닌가요? 기대조차 하지 않았습니다."(한 협동조합 임원)
정부와 재계가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야심차게 내 놓았던 9ㆍ29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 대책이 산업 현장에선 전혀 먹혀 들지 않고 있어, 자칫 흐지부지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중소기업인들 사이에선 9ㆍ29 대책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화두로 꺼냈던 '상생'처럼 결국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수사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좌절감과 냉소 의식들만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아무리 동반성장을 외쳐도 일선 부처에서는 '오불관언'인 분위기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6일 본보가 9ㆍ29 대책이 나온 이후 대기업의 거래 관행 등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 지 중소기업 현장들을 점검해 본 결과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재근 근풍파워툴 대표(한국산업용재공구상협회장)는 "하나도 변한 게 없다"며 "대기업이 말로는 상생과 동반성장을 외치지만 돈이 되는 사업은 절대 포기하지 않은 채 영세업체들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청회며 간담회며 계속 찾아다니면서 하소연하지만 성과가 없다"며 "이젠 돈이 없어 집회를 해 볼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기 시화공단에서 건축용 스티로폼 단열재 생산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A(45) 대표도 "정부와 대기업이 잇따라 동반성장 대책들을 발표한 건 알지만 그 이전이나, 이후에나 바뀐 것은 없다"며 "우리도 그렇고, 다른 중소기업들의 형편이 더 나아졌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다"고 말했다. 한 의류 제작 업체 관계자도 "정부와 대기업이 언론에 나와서 협력사들 도와주고 지원해 준다고 홍보하는 내용들은 이미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냐"고 꼬집었다.
실제로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 대책이 발표된 지 50일이나 됐지만 이에 대한 후속 조치가 이뤄지거나 실제로 시행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정부는 당시 부당반품, 판매 수수료 과다 인상 등의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대규모 소매업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칭)도 제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손도 못 댄 상황이다. 민간과 정부의 강력한 추진ㆍ점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경제단체 및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동반성장위원회'를 발족하겠다고 밝힌 시점도 12월이지만 아직 위원장 및 위원 선정조차 안 된 상태이다. 예산도 문제다. 지식경제부는 기획재정부로부터 예산을 확보해 위원회를 만들 지, 아니면 순수 민간 주도 차원에서 추진할 지조차 정하지 못한 채 계속 검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뒤 늦게 예산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중소기업인들에게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호민인덱스가 무산된 것이다. 호민인덱스는 주요 대기업의 공정 거래 수준을 평가, 점수화해 발표하겠다는 것이 기업호민관실의 계획이었으나 지경부가 동반성장지수(윈윈인덱스)로 일원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동을 걸면서 더 이상 추진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은 지경부의 윈윈인덱스는 언제 발표될 지 알 수 없는 데다 중소기업 보단 대기업 입장이 더 많이 반영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물론 기업 입장에선 비슷한 지수가 따로 따로 발표되는 것은 곤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기업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고 엄정하게 진행돼야 하는 데도 너무 서두른다는 것도 기업들의 걱정거리였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호민인덱스든 윈윈인덱스든 당분간 발표되긴 힘들 전망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9ㆍ29 대책이 나온 뒤 경제수석을 반장으로 한 동반성장 추진점검반이 구성돼 지난달 회의도 갖는 등 꾸준히 작업을 해 왔다"며 "산업연구원의 동반성장지수 연구 용역 발주가 이뤄지고 그 결과에 따라 동반성장지수의 기준 등이 정해지면 내년 하반기면 지수가 발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와 전경련은 내달 6~10일 동반성장위원회를 발족하겠다는 계획이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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