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 제한조치) 도입,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철폐기한 연장,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환급(Duty drawback) 철폐….
16일 통상교섭본부가 공개한 미국측의 요구 사항은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수준이다. 미국측의 요구만 보자면 추가 협상이라기 보다는 재협상이라고 봐야 한다. 특히 세이프가드 등 일부 독소조항에 대해 우리 정부가 수용 의사를 밝힌 것으로 확인돼, ‘퍼주기 협상’ ‘굴욕 협상’공방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상당 부분 내줬다
미국측의 관세 철폐시한 연장 등의 요구를 거부했다지만, 이미 우리 정부는 미국측 요구 사항을 상당 부분 수용했다. 가장 핵심이 세이프가드 도입. 상대국 자동차 수출이 급증해 자국 자동차 시장을 교란시킬 우려가 있을 경우 철폐된 관세를 일시적으로 복귀시켜 수입에 제동을 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최석영 FTA교섭대표는 “한국측이 8%, 미국측이 2.5%의 관세를 물리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두 나라가 동시에 적용할 경우 우리에게도 크게 나쁠 것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한 통상 전문가는 “미국 자동차가 한국에 몰려와 시장을 교란시킬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한국이 세이프가드를 발동시킬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기준으로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 수출대수는 53만대가 넘었지만, 미국산 자동차의 한국 수출은 2,255대에 그쳤다. 한국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항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환경규제 완화도 미국측 압력에 굴복했다. 물론 ‘완전 예외’를 요청한 미국에 ‘일부 완화’로 맞서긴 했지만, 미국측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했다는 평가다. 현재 연간 판매대수 6,500대 미만에 대해서만 적용토록 협정문에 규정돼 있는 자기인증(한국 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간주) 기준을 확대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이밖에 ▦신기술을 적용한 자동차에 기술이 생소하다는 이유만으로 시장진입 제한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주요 기준을 제ㆍ개정할 경우 기업들이 새로운 기준을 준수하기 위해 필요한 적응 기간을 설정하자는 미국측 요구도 수용했다.
협정문 수정도 가능하다
그동안 협정문의 “점 하나도 바꿀 수 없다”고 누차 강조해오던 정부. 하지만 이날은 상당히 후퇴한 모습을 보였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에서 ‘추가 합의가 이뤄지면 일부 변경, 수정된 내용에 대해 국회 비준을 따로 요구할 것이냐’는 자유선진당 이회창 의원의 질의에 “헌법상 보장된 국회의 (비준동의) 권능은 충분히 존중돼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또 ‘외통위에서 수정된 부분을 다시 비준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그런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본다”고 답했다. 협정문 수정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향후 정치권 안팎의 반발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 등 야당에서 제기되는 전면 재협상 목소리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 수준이면 협상을 처음부터 다시 하자는 의미”라며 “앞으로의 추가 협상은 물론, 국내 비준 절차도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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