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미국 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복구가 한창 진행 중일 때다. 피해지역에서 주인을 잃고 굶주린 맹견 2마리가 자기보다 몇 십 배나 커 보이는 황소를 공격하는 사진이 한 웹사이트에 소개돼 충격을 주었다. 이 맹견의 품종은 핏불(pit bull) 테리어. 말 그대로 황소를 물어 뜯는 개다. 원래 1800년대 미국에서 소 도살에 이용할 목적으로 영국산 불독과 테리어 종을 교배해 태어난 종이라고 한다. 그러나 너무 잔인하다는 이유로 핏불 테리어에 의한 소 도살이 금지된 후에는 투견으로 명성을 떨쳐왔다.
■ 도베르만 핀셔, 로트와일러, 저먼 셰퍼드, 도사견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맹견들이 많지만 사납기로는 핏불 테리어가 한 수 위다. 체구는 다른 맹견에 비해 작으나 한 번 물면 야구방망이로 내려쳐도 놓지 않고, 싸움 중에 살 가죽이 찢어져도 도망가지 않는다. 2차 대전 때 미국 해병이 독일군의 경비견인 도베르만 때문에 진지 접근을 못하자 핏불 테리어를 투입해 제압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 사연 때문인지 미 해병대의 마스코트는 핏불 테리어다. 외국에서는 도둑들이 핏불 테리어를 키우는 집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 국내에서도 종종 문제가 되는 비밀 투견장에는 거의 예외 없이 핏불 테리어가 등장한다. 도사견과 진돗개, 풍산개도 종종 투견판에 출전하지만 승률이 높은 핏불 테리어가 가장 보편적인 투견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핏불 테리어는 동물들만 보면 물고 싶은 욕구를 참기 힘들어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개 1위로 꼽힌다. 그러나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도 있어 잘 훈련시킬 경우 사람에게는 매우 순한 편이라고 한다. 사납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핏불 테리어도 훈련시키기에 따라서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13일자)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핏불 테리어에 빗댄 칼럼을 실었다. '김정일은 중국의 핏불'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중국이 핏불 테리어처럼 호전적이고 사나운 김정일 체제를 일본 견제에 이용하고 있다는 취지의 글이다. 필자는 그 근거로 얼마 전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 해상충돌 후 북한의 대일본 비난이 거칠어지고 있음을 들었다. 그러나 막강한 대북 영향력을 지닌 중국이라도 북한의 호전성과 사나움을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혼자서 '핏불 테리어'를 이용할 생각을 버리고, 함께 길들일 생각을 해야 한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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