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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발레무용수들의 마지막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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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발레무용수들의 마지막 뒷모습

입력
2010.11.1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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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올랐다. 어둠 속에서 순백색 튀튀를 입은 백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목숨이 꺼져가는 백조의 날갯짓은 처연했다.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에 맞춰 혼신의 힘을 다해 우아한 몸짓을 만들어내는 발레리나는 2분여의 짧고 강렬한 무대에서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애써 참았다.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마린스키발레단의 최초이자 유일한 외국인 무용수, 유지연(34)씨가 15년의 발레단 생활을 정리하는 순간이었다. 지난 14일 경기 고양아람누리 대극장에서 열린 마린스키발레단의 ‘발레 갈라’ 3부에는 그의 은퇴 무대가 마련됐다. 주역이 아닌 캐릭터 수석무용수가 세계적 발레리나들이 거쳐간 ‘빈사의 백조’를 연기할 수 있도록 해준 건 발레단 입장에선 최고의 예우였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발레 무용수들의 마지막 뒷모습은 어땠을까.

은퇴는 운명이다

무용평론가 장인주씨는 “무용사에 남을 만큼 특징적인 은퇴 무대는 없었다”고 단언했다. 어떤 무용수도 자신의 은퇴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파리오페라발레단 출신의 프리마돈나 실비 길렘(45)은 ‘볼레로’를 그만 추겠다고 선언하고도 또 볼레로를 추기도 했다.

전설적인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1881~1931)의 은퇴는 곧 죽음이었다. 그는 말년에도 자신을 위해 안무된 ‘빈사의 백조’로 활발히 활동했다. 순회공연을 위해 네덜란드로 향하는 길에 숨진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백조 의상을 가져다 달라”고 한 일화로 유명하다. 파리오페라발레단 역사상 최연소 예술감독으로 취임했던 발레리노 파트릭 뒤퐁(51) 역시 불의의 교통사고로 무대를 떠났다.

반면 20세기 굴지의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1938~1993)의 마지막 무대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알코올 중독 상태에서 전세계를 순회하며 은퇴공연을 가졌는데, 사람들은 무대에 술병을 두고 공연할 만큼 심적으로 쇠약해진 그에게 혹평을 쏟아냈다. 파블로바를 잇는 최고의 발레리나 마고트 폰테인(1919~1991)은 운명적으로 그를 만나 은퇴를 미루고 환갑 넘어서까지 춤을 췄지만, 정작 자신의 말년을 아름답게 지켜내지 못했다.

은퇴를 택하다

정상의 무용수들이 인이 박힌 무대 생활을 접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테크닉이 중시되는 클래식 발레에서의 은퇴는 본인이 정하거나, 발레단 정년에 따르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의 대표 레퍼토리를 공연하고, 단원과 관객들의 환송도 받는다. 체제 전환 이전의 러시아는 그들에게 공훈배우라는 칭호와 함께 시내 고급 아파트까지 제공했을 정도다.

일전에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현웅씨는 “나이가 들어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고 생각되면 바로 은퇴를 선언할 것”이라며 “토슈즈를 벗고 관객에게 인사하는 퍼포먼스를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영화 ‘백야’로도 유명한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62)와 아르헨티나 출신의 훌리오 보카(43) 등은 이런 공식적인 은퇴무대를 가진 후 자신의 개성을 살린 무용단을 만들어 안무가, 예술감독으로 멋지게 변신했다.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유지연씨는 “안나 파블로바, 갈리나 울라노바 등 우러러보던 무용수들이 거쳐간 발레단에 입단한 것 자체가 큰 영광이었다”면서 “안무에도 관심이 있지만 가르치는 것이 특히 재미있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내비쳤다. 그러나 구체적인 목표를 밝히기보다 “불러주시면 어디든지 달려가 알고 있는 것을 나누고 싶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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