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김열규의 휴먼드라마] <11> 바다에서, 친구를 살려내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김열규의 휴먼드라마] <11> 바다에서, 친구를 살려내고

입력
2010.11.16 12:01
0 0

중학교 다닐 적에 친구들이 내게 붙여 준 별명, 그건 일본말이었다. 우리말로 고치면, 물귀신 아니면 돌고래쯤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그만큼 나는 바다를 좋아했고 수영을 즐겼다.

그러자니 지난번의 연재, ‘바다에서(1)’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부산 송도 해수욕장은 우리 집 안방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여름 방학 내내 나의 둘도 없는 놀이터였다. 수영하고 다이빙 하고, 물장난 쳤다. 더러는 돈 내고 보트를 타기도 했다. 바다나 물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갖가지 놀이로 마냥 흥청댔다.

물가에서 잠수해서는 해초 사이를 헤치고 다니면서 물고기 무리와 술래잡기하는 것은 여간 신나는 게 아니었다. 큰 물고기인 경우는 물안경 너머로 그것이 유유히 헤엄치는 것을 살펴보곤 했는데, 그것은 신비롭기조차 했다. 한참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내게도 지느러미가 돋아서는 그 물고기처럼 헤엄칠 수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환상에 젖기도 했다.

물론 요 앞 연재에서 소상하게 얘기된 것처럼 다이빙에도 곧잘 마음이 뺏기곤 했다. 다이빙 보드에서 파도 속으로 뛰어드는 그 쾌감은 마치 나 스스로가 한 마리 커다란 날치가 된 것 같은 느낌에 젖어 들게 했다. 날치가 나는 물고기, 그래서 비어(飛魚)라면 다이빙할 적마다 나도 비어로 둔갑하곤 했다.

하지만 여름 바다에서 누리는 또 다른 커다란 즐거움이 있었다. 그것은 먼 거리를 계속 헤엄쳐 나가는 원영(遠泳)이었다. 워낙 먼 물길을 따라가는 것이라 물론 고통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 참아내고는 엄청 먼 거리를 헤엄쳐 나가는 내가 스스로 대견하고 또 기특해서도 원영에 빠져들곤 했다.

송도 해수욕장의 서쪽 모래사장 끝에는 작은 반도인, 곶이 뻗어 있었다. 물가에서 그 곶의 끝머리까지는, 왕복으로 줄잡아도 10리는 되는 거리였다. 나는 한바다를 향해서 불쑥 내민 곶머리까지 헤엄쳐 오고 가기를 이따금씩 해내곤 했다. 그런 중에 어느 날, 나보다 나이가 두 살 위인 이웃집 형과 함께 바로 그 원영을 시도했다.

우리 들은 단단히 마음을 먹곤 우선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곤 그가 앞서고 내가 뒤로 처져서는 헤엄쳐 나갔다. 하지만 워낙 먼 물길이라서 쉽지는 않았다. 물론 단숨에 해낼 수도 없었다. 중간 중간 숨 돌리면서 쉬어야 했다. 그렇다고 몸 기댈 것은 바다 속에 아무 것도 없었다. 붙들고 늘어질 바위너설도 없었다.

그저 파도에 몸 맡기고는 거꾸로 길게 눕는 게 고작이었다. 몸이 둥실둥실 떴다. 파도 따라서 몸이 흔들댈 적마다 하늘도 덩달아서 요동쳤다. 귓전을 스치는 파도 소리는 무슨 기관총 쏘아대는 것 같은 울림을 일으키곤 했다. 그래서도 벌렁 파도에 몸 맡기고 드러누워서는 휴식을 취하는 것은 재미있었다. 그렇게 쉬며 헤엄치며 해서는 곶의 끝머리를 향해서 우리는 계속 헤엄쳐 대고 있었다. 앞 서 가는 형의 뒷다리에서 흰 물거품이 이는 것도 볼만 했다.

그렇게 우리의 원영은 계속되었다. 난류와 한류가 달라지는 탓일까? 물길 따라서 수온(水溫)이 변하면 옴 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였다. 따뜻한 물길이 문득 차가워지면 살갗이 오싹했다. 거꾸로 찬 데서 따듯한 데로 나서면 피곤이 풀리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들, 두 마리의 인간 돌고래는 그렇게 먼 물길 마다 않고 원영을 계속했다.

목적지까지 쳐서 거의 절반쯤 갔을 때다. 앞서 가던 그가 문득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큰 변이 날 것 같이 허우적댔다. 몸이 물 밑으로 가라앉으면서 두 팔로는 수면을 휘저어댔다. 무슨 발악을 치는 것 같았다. 머리가 물에 잠겼다가는 다시 솟아오르곤 했다. 휘저어 대는 손길 따라서 물보라가 일었다.

나는 아차! 했다. 쥐가 내렸구나! 사지의 마비가 일어난 것이리라! 순간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냥 두면 그의 목숨을 보장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나는 속도를 올려서는 그에게 다가 갔다. 한데 그의 손길이 미칠 만한 곳에서 나는 문득 나도 모르게 멈춰 섰다. 그의 허우적대는 손길에 내가 휘감길 것 같았기 때문이었을까? 한데 그 경황 중에도 다급하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쥐 내려서 허우적대는 사람을 구한답시고 그에게 바싹 다가가지 말라!’

어디선가 읽은 이런 교훈 탓에 나는 차근차근 그의 주변을 맴돌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정신 차리고 다리 주물러!”

몇 번 그렇게 아우성쳤다. 그것은 내가 나보고도 외치는 소리였다. 그보다는 우선 내가 정신을 차려야 했던 것이다. 내 외침을 들은 알아들은 그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옆으로 몸을 뉘었다. 그리고는 웅크린 무릎 아래, 종아리를 두 팔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차츰 허우적거림이 누그러져 갔다. 다소 안정을 되찾는 것 같아 보였다.

그때서야 내가 그에게 바싹 다가갔다. 그의 다리를 나도 주물러 주었다. 한참 만에 그가 사지를 편하게 펴고 파도를 등지고는 누웠다.

“살았구나! 이제 됐어.”

나는 그에게 가까이에 있는, 물가로 나가자고 했다. 겨우 헤엄치는 시늉을 짓는 그의 겨드랑 밑을 내 어깨로 받치고는 헤엄을 계속했다. 반은 서서 헤엄치는 꼴이었다. 몹시 힘들었다. 한바탕 아우성을 친 끝이어서 그러지 않아도 잔뜩 지쳐 있던 몸이라, 그를 떠받들면서 헤엄을 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기를 썼다.

얼마를 그렇게 사투를 벌였을까? 한참 만에 물가에 닿은 우리는 모래 바닥에 사지를 뻗고는 죽은 듯이 몸을 뉘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구사일생이었다. 그것은 다급할수록, 위급할수록 차근차근 대처하라는 가르침이 되어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슴에 아로새겨져 있다. 아니 파도치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