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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로비스트, 양성화 해보자

입력
2010.11.16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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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아니, 이런…'했다. 좀 지나니 '오죽하면…'하고 변했다. 어설프다 못해 순진해 보이기까지 한 행태는 안타까움을 더했다. 정년 연장과 봉급 인상 등 처우 개선은 노동조합만 있어도 쉽게 해결됐을 사안이다. 하지만 청원경찰법이 발목을 잡았고, 청원경찰들은 국회의원들에게 법 개정을 부탁했다. '생존형 로비'는 청원경찰들의 그런 딱한 사정과 입법 로비의 불법성을 모두 감안한 표현이다.

로비스트 실재 부정하는 사회

우리 사회는 로비에 부정적이다. 부패와 비리를 키우는 자양분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불법과 반칙이 낳은 온갖 특혜의 중심에서 로비가 횡행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로비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로비스트가 없다고 믿는 이는 없다. 분명 로비스트는 있다. 지연 학연 등 온갖 인연으로 맺어진 '네트워크'를 무기로 소속 집단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정ㆍ관계 주변을 맴도는 이들은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들을 로비스트라고 부르진 않는다. 마당발이라는 둥 대인관계가 좋다는 둥, 폭넓은 인간관계를 강조하는 묘사만 있을 뿐이다. 대형 비리 열 중 아홉에 그런 인물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만연한 로비의 실상을 보여 준다.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당사자들의 중간에서 그들은 사건의 핵심을 이루지만 수사기관도, 언론도 로비스트라고 칭하지 않는다. 참 희한한 현상이다.

로비는 우리 말의 진정(陳情) 청원(請願) 탄원(歎願)과 통한다. 국회의원처럼 힘있는 자들에게 자신의 이해와 관련된 문제를 주지시키고 설득하는 행위가 로비다. 미국 등 선진 민주주의 사회에서 로비는, 특히 국회의원 대상 로비는 의사당 복도나 카페테리아 같은 공개된 장소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우리의 로비는 은밀하다. 뒷거래의 음습한 냄새가 진동한다. 진정한 의미의 로비가 아닌, 합법을 가장한 부당한 청탁이나 회유가 판치고 상호 이익 실현을 위해 실정법을 무력화시키는 편법이 횡행한다.

대기업, 대형 이익단체에는 국회 담당 임직원이 있다. 이들은 의원회관을 무시로 드나들면서 의원 측과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의정 활동을 눈 여겨 보며 소속 기업이나 단체의 이익과 직결된 현안을 챙긴다. 로펌에는 전직 고위 공무원들이 즐비하다. 출신 부처 현역 공무원들과 친분을 유지하면서 정책 수립이나 입법 과정에 로펌 고객의 입장과 이익이 반영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다. 자금과 조직이 없는 단체나 개인은 이런 이들을 활용할 수 없다.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처럼 작고 힘 없는 이익단체는 언감생심일 뿐이다.

로비 활동을 하는 로비스트들은 실재한다. 하지만 로비 활동에 대한 기준이나 규제는 전무하다. 그로 인해 한 몫 단단히 잡는 이들은 돈 많고, 입김 세고, 네트워크 튼튼한 기득권 세력이다. 불법 행위만 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늘 큰 이익을 누릴 수 있다. 청목회처럼 작고 힘 없는 이익단체들이 이들을 흉내 내는 것은 뱁새가 황새 쫓아가는 격이다. 청목회 입법 로비가 단적인 예다. 기득권 세력의 행태를 통해 합법 절차보다 로비가 효과가 빠르다는 것을 배운 사회적 약자들이 서툰 방법으로 실행에 옮겼다가 낭패를 초래한 경우다.

건전한 로비문화 조성 지향을

음성적 로비에 대한 암묵적 용인은 기득권 세력의 배만 불릴 뿐이다. 작고 힘 없는 이익단체들은 불법의 유혹 속으로 자꾸 빠져들 수 있다. 차라리 음지의 로비스트와 로비 활동을 양지로 끌어내 양성화해 보면 어떨까. 현실과 제도 간 불일치, 강자와 약자 간 불공정 상황을 해소하고 건전한 로비 문화를 이끌어 내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약자들도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하고 관철시킬 이익의 대변자가 절실하다. 검찰 수사에 화들짝 놀라 후원금 제도 개선에만 골몰할 때가 아니다. 국민의 대표라면 청목회처럼 약한 단체가 왜 후원금을 싸들고 의원 사무실을 전전해야 했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도리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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