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시간은 이틀. 그 안에 20개국 정상들의 통신부터 경호, 세계 언론들의 뉴스 송신까지 모든 통신망을 설치하시오."
윤영식 KT 강남네트워크운용단장(54ㆍ사진)에게 비즈니스 서밋을 포함해 10~12일 치른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행사는 생애 가장 긴장된 순간이었다. KT가 G20 회의 주관통신사로 선정되면서 관련 통신업무가 모두 그의 어깨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어려서 져 본 무거운 지게를 짊어진 느낌이었다"며 "눈 앞이 캄캄했다"고 회상했다. G20 통신업무가 윤 단장에게 떨어진 이유는 그가 맡고 있는 강남네트워크운용단이 KT의 전국 6개 네트워크운용단 가운데 한강을 기점으로 수도권 이남을 총괄하기 때문이다.
윤 단장은 이석채 KT 회장이 G20 비즈니스 서밋에 토론자로 참석하다 보니 부담이 더 컸다. 이 회장은 평소에 "통신망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문제없이 흘러가야 한다"며 통신망의 중요성을 누누히 강조해 왔다. 따라서 한 치의 실수도 없어야 했다.
G20 행사장인 코엑스와 쉐라톤워커힐호텔에 투입된 KT의 통신회선은 유선전화, 초고속인터넷, 방송회선 포함 총 7,940회선이라는 엄청난 규모였다. 평소 같으면 회선 설치에 두 달이 필요한 규모지만, 행사 특성상 보안과 경호 때문에 정부에서 준 시간은 이틀이었다.
그때부터 실력이 좋은 기술자 900명을 투입해 이틀간 철야 작업을 했다. 특히 회의장인 코엑스는 SK브로드밴드의 통신망만 설치돼 있어, KT는 광케이블 등 모든 통신망을 새로 설치하는 고강도 작업을 했다.
중요한 것은 경호를 위한 유선통신망이었다. 휴대폰 등 무선통신은 정부에서 각국 정상들의 경호를 위해 주파수를 이용한 테러 차단용 방해전파(재밍)를 쏜다. 따라서 경호원들은 행사장 곳곳에 설치된 유선전화를 수시 이용한다. 잠시도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유선 경호통신망을 철저히 구성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했다.
망 설치 후 보안상 정해진 8명의 기술자들이 집에도 가지 못하고 행사장에 사흘 동안 상주하며 통신 서비스에 만전을 기했다. 외부에서는 50명의 기술자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했고, 서울 영동전화국과 남수원 집중운용센터 및 분당 KT본사에서 24시간 원격 모니터링을 했다.
가장 힘든 날은 11일이었다. 하필 황사가 날아든 이날 밤 강풍과 천둥 번개를 동반한 기습 강우까지 쏟아졌다. KT 직원들은 국내 방송사들의 옥외 스튜디오 지원을 위해 노상에 설치한 통신장비들이 비에 젖지 않도록 비닐을 씌우고 옆에서 비를 맞으며 대기했다.
하지만 고생한 만큼 보람도 컸다. 통신서비스에 대해 세계 각국 언론과 정상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4,000여석이 마련된 프레스룸에는 각 좌석마다 초당 100메가(MB)의 자료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초고속인터넷 망을 설치했다. 윤 단장은 "일본 NHK 중계팀은 생방송 20분 전에 자체 통신장비에 문제가 생겨 방송이 중단될 위기였는데 현장 파견인력들이 이를 해결해줘 감사 인사를 들었다"며 "자국에서 10Kb 속도의 인터넷을 쓰던 남아프리카공화국 기자는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기술이 놀랍다는 칭찬을 했다"고 말했다.
정상들도 지급받은 태블릿PC인 삼성전자의 갤럭시탭으로 KT의 고정형 무선인터넷(와이파이)에 접속해 각국의 TV를 보는 모바일 인터넷TV(IPTV)를 세계 최초로 이용했다. 윤 단장은 "각국 정상들이 이동하며 자국 방송을 볼 수 있어 좋았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며 "통신서비스가 국격을 높이는 기회가 됐다"고 뿌듯하게 여겼다.
행사가 끝난 지 나흘이 지났지만 윤 단장은 부르튼 입술이 아직 아물지 않았다. 행사 후 코엑스 전시장의 다음 일정 때문에 이틀 동안 밤을 새워 장비 철거 작업을 했다. 윤 단장은 "예전 국가정보원 원훈처럼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는 것이 통신 기술자들"이라며 "G20 행사로 돈 주고 살 수 없는 귀한 경험을 얻게 됐다"고 강조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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