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부러운 이야기로 핀란드에서는 지역 사회와 학교가 가정과 역할 분담을 잘해서 부모 입장에서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아이를 교육시키지만, 우리 현실은 정반대로 모든 부담이 가정으로, 부모에게로 전가된다. 아마도 대한민국 부모들처럼 자녀교육에 압박감을 느끼는 부모는 세계에 달리 없을 것이다. 최근 학부모 교육이 봇물 터지듯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일단 자녀교육 문제로 위기에 빠져있는 부모들을 돕기 위한 노력으로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부모’의 역할과 진정한 ‘부모’ 역할을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첫째, 부모는 아이의 발달단계에 맞는 교육을 위해 노력하지만 학부모는 조기교육과 선행학습을 위해 애를 쓴다. 당장은 아이들을 밀어붙이는 조기 및 선행학습을 통해 효과를 보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아이에게 지나친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하면서 역전이 일어난다. 학부모보다는 부모 역할에 충실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 자기 수준에 맞는 학습을 통해 착실하게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가기 때문이다.
둘째, 부모는 아이의 개인적인 성장을 위해 노력하지만 학부모는 집단에서의 경쟁과 성적에 매달린다. 당장은 성적에 집착하는 학부모들이 부모 역할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를 억압하기 시작하면서 역전이 일어난다. 학부모보다는 부모 역할에 충실하려는 부모를 둔 아이가 스트레스를 덜 받기 때문에 결국 스스로 의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셋째, 부모는 아이의 적성과 진로에 관심을 보이지만 학부모는 입시와 학벌에 매달린다. 당장은 명문학교 진학에 열을 올리는 학부모가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가 방황하기 시작하면서 역전이 일어난다. 학부모보다는 부모 역할에 충실하려는 부모를 둔 아이들이 다소 늦더라도 진정한 학습동기를 찾게 되기 때문이다.
넷째, 부모는 아이의 주도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학부모는 부모가 주도하는 교육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당장은 아이를 끌고 가는 학부모가 자식자랑을 할 가능성이 높지만 아이가 성장하면서 갈등하기 시작하면서 역전이 발생한다. 학부모보다는 부모 역할에 충실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 사춘기를 거치면서 자기주도성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부모는 경쟁에 지친 아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지만 학부모는 경쟁의식을 불어넣기 위해 다양한 압박을 가한다. 당장은 경쟁에서 앞서가도록 채찍질을 하는 학부모가 우월감을 느끼지만 아이가 서서히 지치기 시작하면서 역전이 일어난다. 학부모보다는 부모 역할에 충실한 부모를 둔 아이가 현실을 깨달으면 자발적으로 공부에 발 벗고 나서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부모보다는 학부모 쪽에 집착하도록 만드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학부모들이 부모들에게 완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한다. 순간순간 성적 경쟁에서 앞서가는 아이들 뒤에는 부모가 아닌 학부모들이 자리잡고 있지만 아이가 계속 앞서가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을. 반면에 당장은 뒤처져 있지만 고학년이 되면서 서서히 자기주도성이 힘을 발휘하고 공부 의욕이 커진 부모의 아이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정리하자면 악착같이 아이가 경쟁에서 앞서가도록 채근하고 다그치는 학부모 역할로 끝까지 아이를 선두그룹에 서도록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학부모들은 소위 말하는 ‘전교 1등’을 선망하지만 사실 전교 1등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계속 바뀐다. 학부모가 나서서 무리수를 두면서 만든 전교 1등은 결코 그 자리를 계속 지키기 어렵다. 한번 1등, 잠깐 1등은 될 수 있을지언정 꾸준한 1등, 계속 1등이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반면에 전교 1등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스타일과 페이스에 맞게 자신과의 경쟁에 주력한 아이들은 중간에 지쳐서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결승선이 가까워지면서 선두그룹으로 치고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요컨대, 현실에서는 학부모가 일방적으로 이기는 것으로 보이지만 진정한 부모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여 아이에게 자기주도성과 생산적인 의욕을 심어준 부모가 결국 승리하고 마는 것이다. 잠깐 1등이 아니라 계속 1등 자리를 지키는, 정말 몇 안 되는 진정한 우등생 뒤를 살펴보면 학부모가 아닌 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학교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기에 학부모의 역할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하루라도 빨리 학교가 제 기능을 발휘해서 학부모가 아닌 부모로서 아이를 대할 수 있는 날이 와야 할 것이다. 경쟁에 지치고 억지로 공부에 매달리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이 암울한 처지에 놓이지 않도록 격려하고, 공부를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하는 역할은 어디까지나 부모의 몫이다. 학부모로서의 욕심을 자제하고 부모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면 최소한 실패하지는 않는다. 사회 분위기나 주변에 편승해서 흔들리지 말고 아이와 소통하고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자. 지금은 아니더라도 결국은 훌륭하게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비상교육공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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