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자마자 담배를 물고 화장실로 향한다. 동거하는 여자친구 지수(엄지원)가 지켜보고 있는데 변기커버를 올리지도 않고 볼일을 본다. 오줌발로 담뱃불을 끄고, 소리 지르는 지수의 엉덩이를 뭔 별 일 있냐는 양 툭 친다. 정말 정 한줌 주고 싶지 않은 마초 중의 마초. 큰 덩치에 각지고 우악스런 얼굴을 떠올리겠지만 의외의 인물이다. 턱 선이 갸름해서 여린 이미지가 선명한 신하균. 영화 ‘페스티발’은 마초 경찰관 장배의 캐스팅부터 전복적인 웃음을 암시한다.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에 고민을 했을 것이라고 예단했다. 그러나 지난 11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신하균은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고 했다. “너무 재미있는 역할이라 시나리오를 본 다음날 (이해영) 감독에게 출연 의사를 비쳤어요.”
하지만 정나미 떨어지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지수가 자신과의 잠자리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뒤 쏟아내는 너저분한 불만들, 그리고 이어지는 남성 확대 수술, 국부 보호대를 바지 위에 찬 꼴불견까지. 신하균은 비호감의 결정체를 천연덕스럽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낸다. 정말 상대하기 싫을 정도로. 신하균도 “너무 찌질해서 내가 남자라도 얘는 정말 싫다”고 말했다. “세상에 그런 남자가 어디 있어요. 여자친구한테 대놓고 ‘나 XX 졸라 커’라고 말하고. 앞으로 후폭풍이 걱정 되긴 하죠. 이제서야!”
“웃기는 내용이라도 촬영을 하는 동안은 내내 진지했다”는 그이지만 선뜻 카메라 앞에 서지 못한 적도 있었다. 술에 취한 채 바지와 팬티를 모조리 내리고선 누워있는 지수의 배 위에 앉아 관계를 강요하는(사실은 애원하는) 장면이었다. 엉덩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라 몸 앞에 ‘공사’를 해야 했던 상황. 그는 “당황할 줄 알았던 엄지원씨가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연기해 생각보다 마음 편히 연기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밉상이라 해도 장배는 사연 있는 마초다. 승진에서 누락된 뒤 마음 속에 깊게 파고든 열등감을 과도한 마초성으로 다스리려 한다. 상처받은 비주류 인생을 묘사하는데 남다른 연기를 보여온 이가 신하균 아닌가. 정신 병력에 시달리는 불우한 청년(‘지구를 지켜라’), 말을 못하는 킬러(‘예의 없는 것들’), 노인에게 젊은 육체를 뺏기는 거리의 화가(‘더 게임’), 신부인 친구에게 아내를 뺏기는 어리숙한 남자 (‘박쥐’) 등. 이 감독이 신하균에게 출연을 제의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듯하다.
“저는 평소 약하고 비주류인 캐릭터나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어요. 여러 감독님들이 저한테서 그런 모습을 많이 보는 듯도 해요. 장배가 밑도 끝도 없이 그런 마초였으면 역할을 맡지 않았을 듯 해요. 전 마냥 이상하고 독특한 인물엔 정감이 안 가요.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역할이 많이 들어와도 현실적으로 제가 공감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해요.”
그의 차기작은 ‘고지전’이다. 한국전쟁 중 남북의 치열한 고지 쟁탈전을 다룬 이 영화에서 그는 “차갑고 절제된” 엘리트 국군장교 역할을 연기한다. ‘고지전’은 그에겐 첫 블록버스터다. “제 마음은 항상 열려 있는데 아직 다양한 역할을 할 기회가 많지 않네요. 제가 잘 할 수 있고 재미있어 할 연기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신하균은 “연기 할 때 단순해지려 한다. 감독의 지시, 상대 배우가 주는 그 때의 느낌에 따라 즉각적으로 반응하려 한다”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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