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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나의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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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나의 인사

입력
2010.11.15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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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보여요, 란 말은 아프리카식 안부 인사랍니다. 나는 종잇조각처럼 몸을 접고 고해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촘촘한 구멍에 대고 무슨 인사를 하겠어요? 진짜 인생은 서른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툭 불거진 이마를 제단에 대고 기도의 공식을 외웠습니다. 나는 당신의 뚱뚱한 손가락에서 읽히고 싶은 사람.

아무도 나를 보지 않네요. 신을 선택할 사이도 없이 세상의 끝으로 갑니다. 풍경은 하나의 취향. 철책이 세워진 운동장. 왼쪽 뺨에 남은 손가락. 피 묻은 롤러스케이트. 장면만 남은 시간은 보속 기도 몇 번이면 사라진답니다. 아, 그런데 당신은 단 한 번도 내게 인사를 하지 않네요.

고해소 쪽문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는 당신. 우주의 비밀은 당신 머리통에서 점점 새까매집니다. 봉인된 글자 안에 나를 두고 나옵니다. 무엇을 고백해야 할까요? 이제부터 나는 아무것도 상관없이 서른입니다.

젊은 예수는 목을 오른쪽으로 꺾고 내려가지 못할 바닥만 쳐다봅니다. 나는 예수의 아랫도리를 천천히 만져 봅니다. 인사합니다. 안녕! 당신이 보여요! 나는 좀 더 친밀한 아프리카 취향입니다. 손등에서 햇빛의 투명한 뼈가 자라납니다.

● 그러니까 줄루족의 안부 인사는 사우보나(sawubona)라고 한다지요. 글자 그대로 옮기자면,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뜻이죠. 작년에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를 보다가 이 인사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고 말할 때는 그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들의 역사를 본다는 뜻이더군요. 제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모든 걸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그 사람은 아마도 내가 왜 태어났는지, 또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죽을지 다 알 수도 있겠네요. 나는 당신을 봅니다, 그건 당신이 살아야할 이유를 압니다, 그런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건네고픈 인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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