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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태의 사진으로 본 한국현대사] <2> 서대문 구치소에서의 신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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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태의 사진으로 본 한국현대사] <2> 서대문 구치소에서의 신입식

입력
2010.11.15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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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유치장 독방에 ‘반공법 위반’ 죄목으로 가둬졌다. ‘지은 죄도 없는데 내가 감옥엘 가게 되다니….’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군사정권과 세상에 대해 적개심이 일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기자인 내가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진짜로 감옥엘 가야 할 사람은 안 들어오고 안 들어올 사람만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여기서 나가면 억울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덜 들어오게 해야지. 세상을 감시하는 기자의 역할을 다해 다시는 억울한 개인이 생기지 않도록 할 테다.’ 가슴 한 구석에 오기와 정의감이 불같이 일었다. 지루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감방에 쭈그려 앉아있다가 인간의 부조리와 내 자신에 대해 돌아보기 시작했다. ‘세상에 죄를 짓는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간수나 경찰, 법관들도 필요 없겠지. 그러면 이들은 뭐하며 살지? 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도둑이나 범법자가 계속 생겨나야 하는데 이것도 문제군. 그럼 사건 사고로 먹고 사는 신문기자가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그렇구나! 나는 그 동안 습관적으로 사건, 사고가 나길 기다려왔어. 무엇을 위해? 특종? 아니면 공명심? 그래, 언젠가 화재 현장을 취재할 때 난 카메라를 가슴에 매고 보다 효과적인 사진을 찍기 위해 불꽃이 더 일어나기를 초조한 마음으로 바랐었지. 이 얼마나 악랄한 일인가! 남의 불행을 보고 안타까워하기보다는 오히려 희열을 느끼지 않았던가. 직업이란 그런 것인가!’ 온갖 상념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중부서 유치장에서 며칠을 보낸 후 4월 23일 오후 5시경 미결수가 모여 있는 서대문 구치소로 이감됐다. 감방에 들어가기 전에 밥을 탔는데 왼 손에는 주먹밥 한 덩이, 오른손엔 소금물에 우거지 한 가닥을 걸친 국그릇을 받아 들었다. 2층 계단을 올라가는데 그릇이 출렁이며 국물이 자꾸 쏟아지자 그게 그렇게 안타까웠다. 배정받은 2층 9호실에 들어서자 침침한 어둠 속에서 벼락치듯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이 자식은 뭐 하는 자식이야!” 바싹 긴장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는데 다시 벽 쪽에서 큰 소리가 울렸다. “야! 너 죄명이 뭐냔 말이야. 귓구멍이 막혔어?” “예. 바, 반공법입니다.” “이 새끼 이거 공산당 아니야. 신입식 제대로 시켜.” 안쪽에서 외치는 목소리를 따라 험상궂게 생긴 놈이 앞으로 나섰다. “이 자식, 정신 못 차리고 있어. 야! 너 이리와. 피 좀 뽑아야겠다.” 그렇지 않아도 겁에 질려있는데 피를 뽑는다는 말에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교도소가 무섭기는 무서운 곳이구나. 피를 다 뽑다니….’ 정신이 아득해지는데 “눈감고 엎드려” 하는 말에 얼른 바닥에 손을 짚었다. 눈을 질끈 감고 기다리자 어떤 놈이 다가오는 듯 하더니 쇠꼬챙이 같은 걸로 옆구리를 툭툭 쳤다. 잠시 후 옆구리를 뭔가가 쿡 찌르더니 이내 졸졸거리며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피가 흐르는 모양이구나. 아,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겁에 질린 상태에서도 눈을 뜨려 하자 예의 험상궂은 놈이 “눈뜨지 마. 자식아. 보면 잘 안 나와!”하고 소리를 질렀다.

일순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뜨니 그것은 일종의 감방 통과 의례였다. 신입이 들어오면 겁을 잔뜩 준 다음에 젓가락으로 옆구리를 긋고 밑에 양재기를 놓은 후 물 머금은 행주를 부위에 대고 짠다. 그러면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나게 되고 마치 피가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옆에서 보면 웃을 일일지 모르지만 겁에 질린 신입들은 엄청난 공포를 느끼는 신고식인 것이다. 통과 의례가 끝난 후 맨 끝 변기통 앞자리에 자리가 배정됐다. 어둠에 눈이 익으며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예의 험상궂은 얼굴이 안면이 많았다. 가만 생각하니 서로 편하게 지내던 시경 형사과 소속 이춘식경사다. 갑자기 안도감과 함께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야, 너 이 새끼 춘식이 아냐! 여기서 너를 만나다니, 네가 나한테 신입식을 시켜?” “어. 정기자. 심심해서 그런 거니까 오해하지마. 자네도 앞으로 후배들한테 신입식을 받을 거야. 조금 있어보면 이게 다 낙이라고….”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이 감방은 주로 경찰출신들이 모여있는 방이었다. 경찰 출신이 일반 범인들과 같이 있으면 보복을 당하고 여러 가지 곤란한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별도의 감방에 수감시킨다는 것이다. 신문기자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처럼 원한을 사거나 못할 짓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날 밤 뜬 눈으로 밤을 지새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조선일보에서 근무할 당시 4.18 고려대 앞 데모 피습사건과 4.19 학생의거 등 많은 특종을 하며 겁 없이 현장을 뛰었고 5.16이 일어나자 편집국에서 너무 날뛰지 말고 몸조심하라는 주문을 했었다. 비교적 조용한 나날을 지내다 한국일보로 자리를 옮긴 후 항상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게 바로 ‘특종의식’ 이었으며 결과가 ‘강화도 전등사 사건’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기사?5.16 군사혁명정부에서 내세운 반공과 함께 불량배, 깡패 등을 발본색원하여 명랑한 사회복지 건설을 이룩한다는 목표를 무색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나와 이목우 사회부장이 구속되고 최병욱 편집위원이 불구속 기소된 이 사건은 5.16이후 한국일보가 군사정부에 호락호락하지 않고 언론 본연의 사명에 충실했던 점을 군정세력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차에 빌미를 주어 결정적으로 걸려든 사건이 됐다. 나는 내가 보도한 기사를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군인들이 하는 정치가 제대로 될 것인가’ 하는 생각에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었다. 일제시대에는 민족의식이나 역사의식 같은 건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지만 6.25를 거치고 신문기자 생활을 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그런 의식들이 가슴 속에 싹튼 것 같다. 나이도 혈기왕성한 30중반이었고 기자로서도 한창 시퍼런 날이 선 것처럼 긴장감을 갖고 살았는데 뜻하지 않은 감방 생활은 과거를 돌이켜보는 좋은 기회가 됐다. ‘여기서 나가면 정말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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