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민규(42)씨가 두 번째 단편소설집 (창비 발행ㆍ전2권)을 냈다. 첫 단편집 (2005) 이후 발표한 24편 중 18편을 골라 수록했다. 2003년 한겨레문학상과 문학동네작가상을 잇따라 받으며 등단한 이래 박씨는 기발한 상상력, 소수자적 감수성에 바탕한 독창적 서사로 2000년대 한국문학의 아이콘 같은 존재가 됐다. 최근 문학평론가 68명의 투표에서 그는 '2000년대 최고의 작가'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단편소설은 소재와 형식에서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현실과 밀착된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기원전부터 먼 미래까지 비역사적 시간을 무대로 상상력을 펼친 작품들도 있다. 특히 후자 계열의 작품에서 작가는 SF, 환상, 무협 등 장르소설적 요소를 자유자재로 차용하는 솜씨를 발휘한다. 어떤 작품이든 공통되는 점은 마치 시처럼 문장 도중에 행갈이를 하고, 쉼표와 말줄임표를 감각적으로 활용하는 특유의 글쓰기 방식.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문장 스타일은 본디 시인을 지망했던 그의 문학적 이력과 무관치 않을 듯하다.
'근처' '누런 강 배 한 척' '낮잠'은 소재상 정통 서사에 가까운 작품들이다. 각각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낙향해 오래 격조했던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는 중년 남성, 치매에 걸린 부인과 자살 여행을 떠나는 남자, 죽음을 앞두고 들어간 요양소에서 치매를 앓는 첫사랑을 만난 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이들 작품에서는 죽음을 앞두고서야 맞닥뜨리게 되는 생의 국면들에 대한 작가의 일관된 관심이 엿보인다. 시적인 문장이 작품의 쓸쓸하고 애잔한 분위기를 더한다. "아무 일 없는 순간이 아무런 일 없는 공간 위에 머물러 있다. 언뜻, 그렇다. 나도 언뜻 이곳에 머물렀지 않았던가."(1권 45쪽)
미래를 배경으로 한 단편들에는 종말론적 상상력이 두드러진다. 정통 SF로 봐도 손색없는 '굿모닝 존 웨인'은 물론이고, 가까운 미래를 무대로 한 '끝까지 이럴래?' '양을 만든 그분께서 당신을 만드셨을까?'에서 인류는 멸망했거나 혹은 절멸을 눈앞에 두고 있다. 개인의 죽음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인류 최후의 죽음에 대한 서사로 뻗어나간 셈이다. 이 중 '굿모닝 존 웨인'은 병든 인간을 냉동시켜 미래에 살려낸다는, 미래소설의 익숙한 소재에 엽기적인 반전을 덧붙인 인상적인 작품이다. 심해 정복을 위해 특별훈련을 받은 디퍼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 '깊'은 정교한 SF 서사와 더불어 작가의 욕망에 대한 통찰이 돋보인다.
소설집을 두 권으로 내는 것도 희귀한 경우다. 박씨는 작가의 말에 "LP 시절의 '더블 앨범'에 대한 로망 때문"에 소설집을 두 권으로 묶었다고 했다. 책 판형을 정사각형에 가깝게 하고(LP판 표지가 그렇듯), 일러스트를 곁들인 수록작 소개 소책자(음반 해설 팸플릿을 연상시킨다)를 첨부하는 등 소설집이 독특한 체재를 갖춘 이유가 그렇다.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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