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토요에세이] 신춘문예 퍼포먼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토요에세이] 신춘문예 퍼포먼스

입력
2010.11.12 12:08
0 0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신춘문예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작가 등용 제도이다. 신춘문예에 언제나 모종의 오해나 루머가 따라다니는 것은 이 독점적 제도가 가지고 있는 어떤 절대성과 배타성 때문일 것이다.

문학과 출판의 선진국이랄 수 있는 미국이나 일본 같은 경우는 문예지에서 공모하는 신인상에 응모해서 당선되거나 출판사에 투고한 작품이 책으로 출간될 경우 정식 작가로 인정받는 관행이 있다. 한국에 비해 작가의 등용 절차가 훨씬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측면이 있다. 미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문학상은 퓰리처상과 아쿠타카와상을 들 수 있는데, 신인의 처녀작에 수상의 영예가 돌아가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도 두 나라 등단 제도의 유연함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 이후 다양한 문학잡지가 창간되면서 문예지 공모를 통해 등단하는 작가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신춘문예는 신인작가 등용문으로서 대표성을 띠고 있다. 문학담당 기자의 귀띔으로는 신춘문예 응모작품 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웬만한 일간지의 소설부문 응모작은 700~800편, 많을 때는 1,000편 정도라고 한다. 시부문은 보통 소설부문 응모편수의 10배에 이른다. 신춘문예가 갖는 위상이 여전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하기야 새해 첫날 신문 전면에 사진과 작품이 실리는 것만으로도 신춘문예가 갖는 세속적 위의(威儀)는 충분히 보전되고 남음이 있다.

보통 신춘문예는 신문사 사고를 통해 11월부터 공지가 된다. 12월 초순경 원고 모집을 하고 열흘 남짓한 기간에 예심과 본심을 거쳐 당선작을 가리게 된다. 당선작은 1월 1일자 신문에 발표된다. 작가 지망생과 문청들은 응모와 심사가 이루어지는 이 기간 동안 혹독한 열병을 앓게 된다. 며칠 밤을 새며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 원고를 등기로 신문사에 보내놓고 전화벨이 울리기만을 기다리는 전전반측의 시간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그 풍경은 확실히 현대에서 드물게 발견할 수 있는 신화적 풍속이랄 수 있다.

열흘 남짓한 짧은 심사 기간 동안 수백 편의 응모작 중에서 당선작 한 편만을 가리는 신춘문예의 심사 방법에 불신의 눈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심사 결과에 대해서 뒷말이 무성했던 적도 있다. 이런 냉소와 불신에 대해서 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은 이렇게 응대한다. "우리가 뽑은 작품보다 더 나은 작품을 떨어뜨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도저히 수준이 되지 않는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는 일은 없다."

다시 말하면, 누가 봐도 형편없는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지는 않는다는 거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신춘문예는 단 한 사람을 당선시킨다. 당선자는 주인공이고 영웅이며 스타로 탄생한다. 하지만 신춘문예가 당선자 한 사람만을 위한 잔치라고 간주하는 건, 당선에 들지 못한 사람이나 당선된 사람 모든 편에서 이로울 게 없다.

재주를 겨루는 단순한 경합으로 치부하기엔 신춘문예에는 묘한 천진성과 환각성이 있다. 신춘문예는 뽑히지 않으면 죽고 못 사는 콘테스트나 오디션과는 다른, 페스티벌 혹은 퍼포먼스 같은 걸로 봐야 한다. 어떤 나라의 국민 수천 수백 명이 특정한 시기에 소설과 시를 쓰겠는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면 놀라서 아연실색할 일이다. 중학생부터 팔순 노인까지, 직업도 천차만별인 사람들이 어찌 됐건 시와 소설이라는 걸 써볼 마음을 먹는 것. 이건 차라리 기적이다. 신춘문예의 존재 의의는 화려한 작가의 탄생보다는 이 문학성의 일상적 현현에 있는 거다.

김도언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