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지음
다산책방 발행ㆍ전 2권ㆍ각 권 1만2,000원
“산은 자신을 노려보던, 아비를 죽이고 수의 오른팔을 뜯은 백호의 청회색 눈동자를 잊을 수 없었다. 운명이었다. 둘 중 하나가 죽지 않고는 끝나지 않는 비극.”(1권 129쪽)
소설가 김탁환(42ㆍ사진)씨의 새 장편소설 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개마고원을 주름잡던 백호 ‘흰머리’를 7년에 걸쳐 쫓는 포수 ‘산’을 주인공으로 한다. 흰머리는 개마고원 일대의 포수들이 영물로 받드는 짐승이지만 산에게는 명포수였던 아버지를 죽이고 집까지 쳐들어와 동생 ‘수’를 곰배팔이로 만든 원수다. 일찌감치 사냥에 소질을 보였던 어릴 적부터 산은 아버지로부터 “가족이 사냥 도중 목숨을 빼앗기더라도 승부가 공정했다면 그 맹수를 쫓지 말되, 제 집을 침범한 짐승과는 목숨을 걸고 맞서라”고 배웠던 터였다. 그로 하여금 험산에서의 풍찬노숙을 견디게 하는 아버지의 가르침은 또 있다. “승부란 적이 가장 강할 때 겨뤄야 한다.”
부친이 남긴 총 한 자루에 의지해 흰머리와의 대결을 기다리는 산 앞에 일본군 소좌 히데오가 해수(害獸) 소탕을 명분으로 군대를 이끌고 나타난다. 여기에 조선 총독의 총애를 받는 동물학자 주홍이 조선호랑이를 연구하겠다며 개마고원을 찾는다. 오로지 출세를 위해 흰머리를 사살하는 데 혈안이 된 히데오는 산이 결코 가까이 할 수 없는 맞수다.
히데오가 사모하는 주홍이 산과 사랑에 빠지면서 깊어지던 두 남자의 갈등은 눈사태 속에서 산과 혈투를 벌이다 기절한 흰머리를 히데오가 잽싸게 포획해 창경궁에 가두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흰머리를 개마고원으로 돌려보내 떳떳한 승부를 치르려는 산과 이를 가로막는 히데오, 인간에 대한 분노에 휩싸여 탈출 기회만 노리는 흰머리는 마침내 경성 한복판에서 물고 물리는 최후의 일전을 치른다.
작가 김씨는 조선총독부가 맹수 퇴치 작업으로 최소 150마리의 조선호랑이를 사살했던 역사적 사실을 소설의 토대로 삼았다. 소재의 희소성에서부터 독자의 관심을 끄는 이 소설은 작가의 치밀한 사료 고증과 현장 답사, 흡인력 있는 서사로 읽는 재미를 더한다. 김씨는 “이 소설을 통해 과연 우리의 진짜 적은 누구인지를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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