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일본 해상자위대의 이지스 구축함 아타고(DDG-177)가 혼슈(本州) 남동쪽 해상에서 7.3톤짜리 참치잡이 어선과 충돌했다. 왼쪽 옆구리를 들이받힌 어선은 두 동강 나면서 침몰, 타고 있던 어부 부자가 실종됐다. 배수톤수 7,750톤인 아타고는 하와이에서 연합훈련을 마치고 요코스카(橫須賀)로 귀항하던 길이었다. 새벽 3시55분, 아타고는 오른쪽 전방에 어선의 항해등을 발견했으나 작은 어선이 피해가려니 생각하고 자동조종 항해를 계속했다. 새벽 4시6분, 뒤늦게 충돌 위험을 느낀 아타고는 전속력 후진을 시도했으나 허사였다.
■ 이 사고는 일본 정치에까지 파란을 일으켰다. 최첨단 레이다 장비 등을 갖춘 이지스 구축함이 초라할 만치 작은 어선을 제때 발견하고 피하지 못했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후쿠다 총리가 중의원에서 야당의 질책을 받고는 억하심정에서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정부가 궁지에 몰린 것은 해상자위대가 "충돌 2분 전 어선을 발견, 피할 틈이 없었다"고 거짓말을 한 탓이었다. 그러나 사고의 근본원인, 구축함 아타고의 잘못은 국제 해상충돌예방규칙에 따라 먼저 충돌회피 항해를 해야 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었다.
■ 국제해사기구(IMO)가 정한 국제 해상충돌예방규칙은 바다의 도로교통안전법이다. 대원칙은 오른쪽 선박 우선, 오른쪽 변침(變針)이다. 구축함 아타고 사고의 경우, 충돌항로(collision course)로 접근하는 두 선박 가운데 오른쪽 어선이 항로를 그대로 지키는 유지선(stand-on vessel)이 되고, 왼쪽의 아타고가 피항의무선(give-way vessel)이다. 아타고가 먼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어선 뒤로 돌아가야 한다. 민간 선박보다 성능과 장비는 물론, 기량과 규율이 앞선 아타고는 작은 어선을 깔보고 바다의 통행법을 무시했다.
■ 10일 밤, 제주도 근해에서 발생한 해군 고속정 침몰사고는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해군 발표로는 G20 경계임무를 마치고 귀항하던 고속정이 왼쪽에서 오던 대형 어선의 뱃머리에 함수 왼쪽을 받혀 침몰했다. 이것만으로 보면, 어선이 피항의무를 어겨 일어난 해난사고다. 물론 조종 성능이 앞서고 항해 기율이 엄격해야 할 해군 함정이 충돌 위기를 피하지 못한 잘못은 따질 일이다. 그러나 '경계 소홀'을 넘어'작은 배가 피해야 한다'고 마구잡이로 떠드는 것은 바다의 통행법에 무지한 짓이다. 캄캄한 바다의 해난사고에 천안함까지 들먹이는 선정적 논란은 역겹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