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선언문의 내용을 뜯어보면 주요20개국(G20)이 정상회의 기간 동안 조금이라도 진전된 합의를 일궈내기 위해 겪은 산통(産痛)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환율 문제에서는 경주 재무장관회의의 합의 수준에서 거의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했고, 경상수지 목표제(가이드라인)에서는 ‘합의시점’을 합의하는데 그쳤다. 과연 서울 코엑스에서는 어떤 상황이 펼쳐졌기에, G20은 기존의 기대를 뛰어넘지 못한 문구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환전(換戰)’의 최대 격전지로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코엑스에선 이번 주 내내 짙은 전운이 감돌았다. 국제금융기구 개혁과 금융규제 개혁 문제는 서울 회의 이전에 일찌감치 합의됐고, 다른 의제 역시 재무차관 및 셰르파(교섭대표) 회의가 거듭되면서 접점이 마련됐지만, 환율에서만큼은 팽팽한 대치가 이어졌다. 각국 정부로부터 강한 주문을 받아 온 차관들의 회의는 매번 새벽까지 이어졌고, 언성이 높아지는 긴박한 상황도 연출됐다.
정상들이 마지막으로 바통을 이어받은 11일 이후에도 한발짝 앞으로 내딛기가 어려운 상황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에게 대놓고 위안화를 절상하라(오바마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고 했을 만큼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거셌지만, 미국은 끝내 대중(對中) 봉쇄에 참전할 우군을 얻지 못했다. ‘경쟁적 통화절하(devaluation) 자제’를 ‘경쟁적 저평가(undervaluation) 자제’라는 한 단계 격상된 표현으로 바꾸는 데도 실패했다.
미국이 이런 상황에 몰린 것은 서울 정상회의 직전 연방준비제도(Fed)가 2차 양적완화(QE2)를 발표한 영향이 컸다. 달러 쓰나미가 자국 통화가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각국이 양적완화 정책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면서, 중국을 포위할 공동전선 구축 논리가 설득력을 잃게 됐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로이터 통신은 ‘19대 1(G20 다른 회원국 대 미국)’의 구도가 만들어졌다고 평가했고, AP통신은 공동선언문 발표 후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데 (다른) G20 회원국이 협조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결국 두 패로 갈라져 으르렁거린 ‘덩치’들의 싸움 앞에서, 환율에서만큼은 한국이 중재력을 발휘할 여지가 별로 없었던 것으로 관측된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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