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르렁대던 주요 20개국(G20)이 다시 한 번 손을 맞잡긴 했다. 하지만 다급한 처지에 듬성듬성 상처를 꿰매놓은 수준. 봉합실은 금세라도 뜯어질 수 있을 것처럼 약해 보인다. 우리 정부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자평을 하고 있고 재무장관회의 합의(경주 선언)보다 몇 발짝 더 나간 것은 사실이지만, 환율 갈등에 종지부를 찍기에는 역부족으로 평가된다.
그래도 다른 의제나 행사 진행 등에서는 크게 흠 잡을 데가 없었다. 환율 부문을 제외하고 보자면, 이번 서울 G20 정상회의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다.
기대치 너무 높았다
애초 의장국인 우리 정부와 미국이 강력히 주장했던 경상수지 수치 목표는 과욕에 가까웠다. 수치 목표란 글로벌 불균형 해소를 위해 경상수지의 흑ㆍ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의 일정 비율(4%)로 억제하자는 것. 자국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함으로써 경상수지 흑자폭을 키워 온 중국 등 신흥국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였다. 하지만 경상수지란 환율 외에도 수출 경쟁력 등 다양한 시장 요인에 의해서 좌우되는 지표인데, 이를 일정 수치 이내로 묶자는 시도는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렇다고 경상수지 예시적 가이드라인 마련이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니다. 내년 상반기 중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연말까지 첫 평가에 착수한다는 일정에는 합의한 상황. 어떤 식으로든 가이드라인이 도출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진전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당초 의도대로 일률적인 수치목표를 제시하는 것은 사실상 무산된 처지. 경상수지가 지속 가능한 수준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다양한 지표들이 내년 초까지 논의되겠지만, 별 실효성은 없어 보인다. 정부 한 관계자도 “구속력 있는 지표를 만들기도, 이를 벗어났을 경우 이행을 강제할 수단도 현재로선 마땅치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환율 역시 경주 합의 이상을 도출해 내지는 못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환율 유연성 제고’라는 표현이 추가된 정도였다.
환율 갈등 봉합에는 역부족
똑 같은 내용이라 해도, 장관회의와 정상회의에서의 합의의 무게가 다를 수는 있다.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라는 대형 악재 속에서도 일부 경주 합의에서 담지 못했던 내용을 명시했다는 점도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 역시 환율갈등의 봉합으로 이어지기엔 한계 또한 뚜렷하다. 공식 회의체 아닌 G20으로는 각국을 얽어 맬 수 있는 구속력 있는 규제를 만들기란 어렵고, 더구나 경주 합의에서 이미 경험했듯, ‘시장 결정적 환율’등의 원론적 합의는 빠져나갈 수 있는 구실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외환시장 한 관계자는 “환율`갈등을 봉합한 것은 1980년대 플라자합의가 유일한데, 그런 결실을 내기엔 국제경제환경과 국가간 힘의 판도가 너무 달라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서울 합의가 의미를 지니느냐 여부는 향후 세계 경제의 향방에 달려있다고 지적한다. 어차피 각국이 자국 경제 관점에서 환율을 운용할 수 밖에 없는 이상, 충돌재연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다는 것이다. 장 민 금융연구원 국제거시금융연구실장은 “일부 불확실성을 거둬들였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주요국 상황에 따라 갈등은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다른 의제ㆍ행사 진행은 만족
사실 환율은 G20 정상회의 본연의 의제가 아니었다. 당초 우리 정부가 가급적 회의에서 환율 문제를 다루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환율이라는 돌발 의제를 제외하고 보면, 이번 서울 회의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비교적 후한 편이다. 의장국인 우리 정부가 주도했던 ‘코리아 이니셔티브’는 원하는 수준의 성과를 거뒀고, 국제금융기구 개혁이나 금융규제 강화 같은 다른 의제에서도 괄목할만한 진전을 이뤘다. 과도한 행사 홍보나 집착이 일부 지적을 받긴 했지만, 전반적인 행사나 회의 진행도 매끄러웠다는 평가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회의를 통해 한국의 높아진 위상과 능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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