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부자 순위를 ‘싹쓸이’한 집안이 있다. 미국 최고 부자 10명 중에 4명이 이 집안 사람들이다. 세계 최대 할인마트 체인인 월마트의 창업주 샘 월튼(1918~1992)의 상속자들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둘째 며느리 크리스티는 재산이 240억 달러(약 27조원)로 미국 네 번째 부자이자, 여성 중에서는 세계 제일 갑부다. 셋째 아들 짐(201억 달러) 막내딸 앨리스(200억 달러) 장남 롭(197억 달러)도 각각 미국에서 7, 8, 9번째 부자다. 세계 20대 부자에도 모두 이름을 올린 이들의 재산을 다 합치면 836억 달러(약 94조원). 세계 최고 부자 빌게이츠(540억 달러)보다 많다. 이 천문학적인 부(富)는 어디서 온 걸까.
월마트의 전설, 샘 월튼
이 부의 근원은 박리다매 전략으로 미국인들을 빨아들인 할인마트의 신화, 월마트를 창업한 샘 월튼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클라호마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샘은 어릴 때부터 신문, 우유 배달 등을 하며 스스로 돈을 벌었다. 미주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45년 전역한 후부터 아칸소주에서 잡화점을 운영했다.
그의 소신은 확고했다. “가격을 낮춰서 판매량을 늘리자.” 그는 상품 공급업자들을 찾아 다니며 공급가를 최대한 낮췄고, 고객들의 호응에 매출액과 점포수도 함께 늘어갔다. 그러던 62년, 아칸소주 로저스에 월마트 1호점을 연다. 샘은 ‘상시 저가 정책(Every Day Low Price)’을 내걸고 “어떻게 해서든 언제나 싸게 팔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2, 3호점을 내면서 중소도시 상권을 장악해간다.
미국 전역으로 점포를 늘리며 승승장구한 그는 1호점을 연 지 20년 만인 82년 포브스 선정 미국 최고 부자에 오르고, 90년에는 또 하나의 거대 할인마트 K마트를 앞지른다. 마침내 2002년, 제너럴 모터스(GM)나 엑슨모빌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 대기업을 제치고 전세계 매출액 1위 기업에 오른다.
현재 미국에만 평균 매장크기가 3,035평인 월마트 매장이 723개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지화에 실패해 진출 8년 만인 2006년 철수했지만, 영국 중국 일본 등 15개국에 4,292개의 점포를 두고 있다.
샘은 92년 골수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으로 사망했다. 이후 장남 롭이 회장을 맡아 월마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아버지의 절약 정신을 빼 닮았다고 한다. 샘은 미국 최고부자가 되고 난 후에도 1979년형 붉은색 포드 픽업트럭을 몰고 다니고, 동네 이발소에서 이발을 했을 정도로 검소했다. 롭 역시 회장이면서도 3평 남짓한 사무실을 쓰고 있다고 한다.
둘째 아들 존은 2006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존의 부인 크리스티가 상속인 중 가장 부자인 것은 존이 생전에 태양전기 관련 주식에 투자한 것이 3배 넘게 뛰었기 때문이다. 셋째 아들 짐과 막내딸 앨리스는 회사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싼값의 이면
월마트는 세계 최고의 기업 중 하나지만 ‘악덕기업’이란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닌다. 싸게 팔기 위해 비용을 최소화 했고, 그 희생은 직원들이 떠안았다. 최저수준의 임금을 주는데다 직원의 절반 가까이가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비정규직 비율도 높다. 새로 들어온 종업원 중 70%가 1년 내에 직장을 옮긴다고 한다. “노조는 분열세력으로 회사의 경쟁력을 상실하게 한다”는 샘의 원칙대로 노조 역시 허용하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2006년 월마트가 힐러리 클린턴 당시 상원의원에게 5,000달러의 후원금을 전달하자, 힐러리가 “악덕 기업의 돈은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하기도 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값싼 중국산만 수입해 미국 경제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비판 역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샘은 생전에 “우리가 1달러를 낭비하면 고객 주머니에서 1달러를 도둑질하는 것과 같다”며 비용 절감을 외쳤지만 이것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
샘의 철저한 ‘절약 정신’은 기부에도 그대로 적용된 듯하다. 교회 등에 기부 활동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 규모는 전 재산의 1%도 안 된다고 한다. 2005년 파이낸셜타임스는 ‘인류사회에 어떤 사회적 문화적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기준으로 ‘영향력 있는 세계적 갑부’를 뽑았는데, 월튼가에서는 아무도 뽑히지 못했다. 샘의 자녀들 역시 사회 환원에는 인색하다는 얘기다.
월마트는 지난달 대도시에서 소형 매장을 개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땅값이 싼 중소도시에서 대형매장을 운영해왔지만, 기존 매장의 4분의 1 규모의 매장을 도심에 내겠다는 것. 중소도시에서 이미 수 천개의 소규모 점포를 고사시킨 월마트의 진출 소식에 도심 마트의 반발이 거세다고 한다.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골목 상권 진출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우리에게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다. 월마트는 과연 어디까지 파고 들까.
다음주에는 인도 최대의 이동통신업체 바르티에어텔의 창업주 수닐 미탈을 소개합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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