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선언의 승자와 패자가 서울 선언에선 뒤바뀌었다. 경주 재무장관 회의 당시 ‘시장결정적 환율’과 ‘경상수지 가이드라인’을 들고 나와 관철시켰던 미국이, 서울 정상회의에서는 독일과 중국의 강한 협공에 부딪혀 별다른 진전을 이뤄내지 못한 것이다.
특히 속내는 다르지만 독일과 중국은 ‘경상수지 흑자국’이란 공통분모 속에 ‘의도하지 않는 동맹전선’을 구축, 미국을 견제하는데 성공하며 ‘승자’대열에 우뚝서게 됐다.
무엇보다 가장 큰 쟁점인 환율과 경상수지 부문에서 국가간 성패가 갈렸다. 환율과 관련, 애초 미국은 “경쟁적 평가절하를 자제한다”는 문장에서 ‘평가절하(devaluation)’ 대신 ‘저평가(undervaluation)’라는 단어를 쓰자고 요구했다. 이는 위안화가 크게 저평가돼 있다는 점에 국제적인 동의가 이뤄져 있다는 점을 감안, 직접적으로 중국을 겨냥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이 같은 요구에 중국이 반발했음은 물론, 다른 나라들도 미국에 크게 동조하지 않으면서 이 제안은 관철되지 못했다.
경상수지 흑ㆍ적자 폭을 일정 범위(상하 4%) 안에 묶기 위해 ‘예시적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조기경보 체제를 가동하자는 미국의 제안도 독일과 중국 등 경상수지 흑자국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일정만 합의하는 데 그쳤다. 사실 이는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유도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줄여 보려는 의도에서 나온 아이디어였지만, 그 영향이 중국뿐 아니라 독일 등 다른 흑자국에까지 미치자 흑자국들이 ‘연대’해 들고 일어난 것.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경상수지 목표제는 현실성도 없고 효과도 없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결국 서울 회의에서 미국은 경주 회의보다 거의 진전된 게 없는 서울선언에 만족해야 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강제하지 못한 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에도 실패해, 강력히 추진 중인 ‘수출 2배’ 정책에 브레이크가 걸리게 됐다. 일각에선 “서울정상회의에서 빈 손으로 돌아가게 된 사람은 오바마 대통령”이란 얘기도 나온다.
반면 중국과 독일은 위안화 절상 공세와 경상수지 목표제에 강하게 저항함으로써 사실상 승리자가 됐다.
이렇게 경주 선언과 서울 선언의 승자와 패자가 뒤바뀐 데는 3일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결정한 6,000억달러 규모의 ‘2차 양적완화’로 인해 G20 국가들이 중국을 압박하는 미국에 적극 동조하지 않은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달러화를 찍어내 가치를 떨어뜨리고 다른 국가에 급격한 환율 변동을 일으키는 미국에 대해 반감이 생긴 것.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공동 선언문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 양적완화에 대한 질문을 받고 “미국 경제회복을 위한 것이지, 달러 평가절하를 위한 것이 아니다”는 해명까지 해야 했다.
한편 지난 번 경주 회의 때 대선으로 불참했던 브라질은 이번 회의에서 선언문에 “과도한 환율 변동성을 완화하는 거시건전성 규제”를 명시하도록 강하게 주장해 성공했다.
반면 엔고에 시달리는 일본은 경주 회의에 이어 이번에도 이렇다 할 이익을 얻지 못한 것은 물론, 자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에 바빠 주요 쟁점에 대해 이렇다 할 입장 표명도 하지 않는 등 G20에서 전혀 ‘존재감’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개최국이자 의장국으로서 돋보이는 입지를 구축했지만 ‘중재역’과 ‘가시적 성과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미국 편에 섰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게 됐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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