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쟁한 실력자들 앞에서 나와 작은아이는 손에 땀을 쥘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생인 작은아이에게 매주 슈퍼스타 K2에 대해 건성으로 전해 듣곤 했으나 급기야 아이에게 이끌려 결선 바로 일주일 전, 그러니까 허각과 존박 그리고 장재인 세 명이 대결했던, 준결승 무대를 처음으로 시청했던 것이다. 내심 나는 음감, 박자, 매너, 리듬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장재인을 응원했으나 그는 결선 의자에 앉지 못했다. 그날 서바이벌 게임에서 장재인은 아름답고 당당하게 루저(loser, 패배자)임을 인정하고 승자에게 축하를 보내주었다.
루저라는 말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 것은 지난해 11월 KBS 2TV ‘미녀들의 수다, 여대생을 만나다’가 계기가 됐다. 오로지 사람 키를 근거로 루저 여부를 판정해 버려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더니 올해 7월 MBC TV ‘세상을 바꾸는 퀴즈’를 통해 또 한 차례 구설에 오르더니 지난 8월에 방영된 SBS 뉴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파문의 중심에 기름을 끼얹고 말았다. SBS ‘나이트라인’은 지방대를 졸업한 이모씨가 국내 간판가게에서 일하다 미국 뉴욕 스쿨오브 비주얼아트에 편입한 뒤 3년 동안 클리어 어워드 등 국제 광고제에서 29개의 상을 수상한 것을 소개했고 뉴스 중간에 “루저에서 광고 천재로”라는 자막을 내 보냈다. 앵커는 생방송 중, 스튜디오에 나온 이씨에게 “이른바 루저에서 광고천재로 인생역전을 했다고 하던데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하는 등 이씨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일주일 전, 응원했던 가수가 루저가 된 탓에 허허로운 마음으로 시청했던 슈퍼스타 K2 결선, 그 결승에서 만난 허각과 존박의 스펙이 공교롭게도 미디어 권력이 분류해 놓은 루저와 위너의 대결 곧,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 재학 중이면서 180㎝의 키에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기에 충분한 외모를 가진 존박과 163㎝의 키, 중졸 학력에 환풍기 수리공인 허각이 한판 대결을 펼쳤다는 점이 나의 묘한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인터넷과 문자메시지로 심사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 점이 그들의 심사셈법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리라.
그러나 나와 아이의 주된 공연의 관심과 감동은 단연 허각의 풍부한 성량과 아름다운 고음 그리고 존박의 타고난 음감과 적당한 바이브레이션이었다. 그럼에도 ‘어차피 존박이 우승하게 되어 있다’ 라고 생각했다던 가수 이하늘의 말처럼 루저 파문이 슈퍼스타 K2에서도 일어나면 어떡하나, 하는 조바심이 일었던 것도 사실이다.
결선 날, 이른바 루저, 허각의 우승보다 눈에 더 띈 대목이 있었다. 문자투표 130만 콜이라는 놀라운 슈퍼스타 K2의 위력이 그것이었다. 단순한 연예프로그램의 관심 수준을 훌쩍 뛰어 넘은 이 경악할 관심과 열기, 거기엔 무슨 대중심리가 작동을 했던 것일까, 궁금했다. 대중들의 사회현상 표출, 곧 사회적 욕구가 그 안에 상당부분 담아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미디어 권력과 사회 기득권층이 암암리에 그어놓은 루저와 위너의 경계를 허물라는 대중들의 메시지이자 침묵시위였던 것이다. 무한경쟁사회에서 루저와 위너가 필연적으로 발생될 수밖에 없다면 그 과정과 결과는 대중이 수긍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하고 절차 역시 투명해야 한다.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미디어 아웃사이더인 케이블 TV Mnet의 슈퍼스타 K2는 대중들과 함께 소통의 장치를 이끌어가며 7개월 동안 묵묵히 이행해 왔던 것이다.
정재흠 한국,미국공인회계사 · 재단법인만포장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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