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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시대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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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시대 유감

입력
2010.11.1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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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성큼 다가온다. 새로운 다이어리를 장만하고 내년 계획을 세워야 할 때이다. 다이어리를 보면 연간 계획에서 월간, 주간, 일별, 그리고 하루의 오전, 오후까지 세부적인 계획표 양식들로 정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 속에 미래에 할 일과 약속들을 빼곡하게 채우면서 우리의 시간은 지면으로 양식화된다. 거기에 시계가 첨부되어 바늘이 움직이고 숫자가 넘어가면서 우리의 행동은 공간적으로 양식화된 시간 속에 짜 맞추어 진다. 우리 시대의 불가피한 생활양식이지만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은 유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을 직선으로 표상한다. 직선은 시작, 중간, 끝이 있으며 균일한 부분들로 나누어 질 수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공간의 성질로 시간을 이해하고 통제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다이어리, 달력, 시계는 시간을 공간과 같은 성질로 이해하는 데 수반하는 결과물들이다.

하지만 시간은 공간과 달리 연속적이지도 않고 동일한 간격으로 분할되지도 않는다. 철학적으로 말해서 인간의 의식은 직선과 같은 과거, 현재, 미래의 연속선 위에 있지 않다. 의식은 오직 현재 속에 있을 뿐 과거와 미래는 살아 있지 않다. 과거는 현재의 기억이고 미래는 현재의 계획이다. 불연속적으로 거듭나는 현재의 과정 속에 인간의 의식과 생명이 있다. 공간화된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를 균일하게 여겨 의식과 생명이 숨쉬는 현재를 직선의 균일한 부분으로 무차별화하여 현재를 망각하게 한다.

시간을 통제하기 위해 공간적 구성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불가피한 삶의 양식이다. 불가피하지만 자연의 본성과는 어긋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달력과 시계에 대한 부적응은 자연과 생명의 상징이다. 시간을 공간으로 시각화하여 나누고 쪼개고 거기에 활동을 맞추어 가면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된다.

농부의 마음이 천하의 근본이라 한다. 계절이 바뀌고 기후 변화와 농식물이 생장하는 이치에 맞추어 생산을 하는 농부는 자연의 생명과 더불어 살아간다.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며 자연의 이치를 지혜로 터득하고 자연과 더불어 생명을 유지한다. 우리가 적응해야만 하는 달력과 시계에는 숫자와 글자만 있을 뿐 계절과 기후의 변화도 없고 자연의 생명이 없다. 그런 달력과 시계에 적응하다 보면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고립되고 달력과 시계의 기계적인 법칙에 삶은 지배된다.

미래를 계획적으로 통제하고 준비하는 능력에서 사람들의 편차를 게으름과 성실함의 차이로만 이해하는 것은 바로 잡아야 할 편견이다. 시계와 달력에 행동을 통제하는 능력이 선천적으로 약한 사람들이 있고, 난 그들의 부적응에 연민을 느낀다. 자연적 본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부적응은 커지게 마련이다. 그것은 게으름이나 불성실과는 다른 선천적인 부적응의 측면이 있다. 마치 왼손잡이가 오른손을 사용하려 할 때 타고난 오른손 잡이보다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제 곧 12월이다. 말일을 기준으로 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하는 기업들은 생산과 금융을 마지막 날짜에 맞추기 위해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 하루라도 늦으면 모든 일은 허사가 된다. 올해의 마지막 날과 새해 첫날에 뜨고 지는 해와 달은 큰 변화가 없지만 우리가 만든 사회와 시대의 문화는 달력의 끝장과 앞장의 차이에 따라 결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신격화된 달력과 시계는 자연의 관점에서 이상스럽지만 우리가 따라야만 하는 불가피한 삶의 양식이리라. 적응은 불가피하되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편견은 벗어나야 한다.

조성우 영화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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