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총리의 말은 맞지만

입력
2010.11.12 12:12
0 0

"너의 말이 맞다.""너의 말도 옳다.""듣고 보니 너의 말도 일리가 있다." 잘 알려진 조선시대 재상 황희(1363~1452)의 일화다. 싸우던 여종A와 여종B를 향해, 또 중간에서 구경하던 조카C에게 한 말들이다. 역사적으로 소신과 원칙을 겸비한 인물로 유명하지만 우리에겐 배려와 관용의 리더십을 발휘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현대적 사법적 정의를 들이대면 어떨까. "(원고)검찰의 주장이 맞습니다.""피고(피고인)의 해명도 옳군요.""변호사의 설명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이렇다면 사법적 판결은 원초적으로 존재의미가 없다. (B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A의 말이 맞다거나, (C의 설명은 감안하되) B의 주장이 옳다고 결론을 지어야 한다. 법과 양심이라는 기준에 따라 잘잘못을 선택하는 일이 법관의 본분이다

황희 정승의 말과 법관의 역할이 오버랩된 것은 김황식 국무총리의 최근 발언들 때문이다.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잘 사는 노인에게 공짜 지하철표를 주는 것은 잘못이다"고 말했고, 얼마 전 국회에서 "부잣집 아이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답변했다.

부작용에 초점을 맞춘 아쉬움

공짜표라는 '피고'를 보자. 그것을 노인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 그래서 잘 살면서 공짜표를 사용하는 것은 목적과 취지에 어긋나며 국가적 낭비임에 틀림없다. 그 돈을 더 요긴한 곳에 쓰면 당연히 좋을 터이다. 잘사는 노인에게 지급되는 공짜표는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넘어 잘못된 시책으로 '유죄' 쪽이다. 무상급식도 그렇다. 세금을 거둬 배를 곯는 아이들에게 끼니를 해결해 주자는 게 목적인데 식사 걱정은커녕 비만을 염려하는 자녀들에게도 공짜밥을 제공하는 셈이니 합목적적이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정책목적에 어긋나는 쪽에 국민세금을 허비하는 것이니 역시 '유죄'라 볼 수 있다.

법리적인 비유가 어설프다면, 감사라는 잣대를 들이대 보면 명백한 잘못임을 알 수 있다. 공짜표는 불필요한 예산낭비로 지하철 운영의 적자를 부추기고 있다. 무상급식은 그 돈을 절약해 비 새는 교실천장이나 깨어진 유리창을 수리할 수 있다. 돈 씀씀이가 적절하지 못했으니 영락없는 감사 대상이다. 사안마다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판결이나 국민세금이 낭비 없이 집행되는 것을 살펴야 하는 감사의 의미로 보면 공짜표나 무상급식은 아무래도 잘못된 일임에 분명하다.

김 총리가 취임 일성으로, 또 국회답변에서 이 두 가지를 힘주어 언급한 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평생토록 법에 따른 판단을 중시한 엄정한 법관이었으며, 직전까지 양심에 따라 국가예산 집행을 감독해온 감사원장이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공짜표에 대한 그의 지적은 합리적이어서 틀린 게 아니며, 무상급식에 대한 인식도 예산의 효율화 측면에서 어긋나지 않는다.

하지만 '2% 정도' 부족해 보이는 현실에 대한 배려와 관용이 그의 원칙과 소신을 무너뜨리는 듯하여 안타깝다. 잘못과 부조리를 척결하는 데 엄정했기에 혹 '잘못과 부조리가 아닌 대부분의 현실'에 무감각해진 것은 아닌지. 공짜표를 받아가는 대다수의 노인들, 무상급식을 기다리는 수많은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 오히려 뒷전에 있었다고 여겨지지 때문이다.

다수의 아픔에 관용과 배려를

창구에서 공짜표를 건네주는 직원들 보기조차 민망해 하는 노인들에게 누구는 부자, 누구는 가난뱅이라는 구별까지 지어야 하는가. 무상급식 대상자가 아닌 척하려고 속이 안 좋다고 말한 뒤 몰래 수돗물을 들이키는 그러한 친구는 없었는지 모르겠다.

옛 재상 급 관직으로 우리는 내각의 우두머리라는 의미의 수상(首相) 대신 전체를 모두 관리한다, 혹은 모든 이치를 살피는 직책이라는 의미로 총리(總理)라는 말을 쓴다. 시시비비에 정확한 법관이나 효율과 부조리에 엄격한 감사원장은 총리의 필요조건일 수 있으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것은 배려와 관용의 리더십이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