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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굴피나무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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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굴피나무의 시

입력
2010.11.1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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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피나무 뵈러 갑니다. 나무를 사랑하는 선배 시인의 뒤를 따라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전읍리 양지마을에 서 계신 굴피나무 뵈러 갑니다. 저도 시인입네 하면서 나무에 대해 아는 척했지만 울산에 굴피나무가 계신 줄 몰랐습니다. 찾아가 인사 드리니 수령은 300~350세, 키는 9.5m, 가슴높이 둘레가 3.2m의 노거수입니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목록에는 굴피나무가 없습니다. 그건 굴피나무 중에 노거수가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어쩌면 제가 인사 드리는 이 굴피나무가 최고령 어른인지 모르겠습니다. 양지마을 굴피나무도 큰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지난 1997년에 몸통의 왼쪽 부분의 절반을 도려내는 큰 수술이었는데 쾌차하셔 오늘까지 푸름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선배의 설명에 따르면 굴피나무는 석기시대부터 한반도의 중부 이남지역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해 오신 나무라고 합니다. 지난 1998년 울산의 옥현지구에서, 왜의 도작(稻作) 기원설을 완전히 뒤집는 기원전 7~6세기 경의 청동기시대의 논이 발견되었을 때 굴피나무 목편도 나왔다고 합니다.

완도에서는 장보고가 청해진을 지을 때 굴피나무로 목책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굴피나무는 사라진 나무가 아닙니다. 강원도에서는 굴피나무로 지은 너와집에서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굴피나무를 한참 껴안아 봅니다. 아무래도 오늘 밤에 시 한 편을 쓸 것 같습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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