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기국회에도 수많은 쟁점 법안이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입법의 홍수라 할 만하다. 제출된 법안을 꼼꼼히 살펴보면 무리한 입법이나 개정 발의도 적지 않다. 조문 한 두 개를 고치는 일부 개정안이 있는가 하면 지난 17대 국회에서 어렵게 제정하거나 개정한 법률들이 다시 개정될 처지에 있다.
시행 1년 만에 개정 추진
법은 사회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제정되고 또 개정된다. 실정법이 명백히 잘못되었거나 입법의 흠결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 그러나 이익집단이나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법률을 아침에 바꾸고 저녁에 고치면, 법적 안정성은 유지될 수 없다. 실정법은 입법자의 자의(恣意)의 산물로 여겨지고, 결국 법과 입법 권력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쟁점 법안 중 14개 법안을 악법으로 선정했다. 여기에는 양형위원회가 대법원 소속이라 법원 입장만 대변해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대통령 소속으로 바꾸는 내용의 양형기준법안이 들어 있다. 이 법안은 기존 양형기준안 형량 범위의 폭을 더 촘촘하게 하는 미국식 양형기준 방식을 도입, 이 기준을 벗어날 경우 그 이유를 의무적으로 밝히도록 하는 것이 골자이다.
왜 민변은 이를 악법으로 평가했을까. 2007년 법원조직법을 개정하여 대법원에 설치한 양형위원회가 우선 8개 중대범죄의 양형기준을 시행한지 겨우 1년을 넘긴 시점에 양형위원회 소속과 양형기준의 효력을 바꾸는 전면적 개정을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입법 발의라는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17대 국회는 깊이 있는 논의를 거쳐 양형위원회를 대법원 소속으로 두고, 권고적 효력을 가진 양형 기준제를 시행하기로 입법적 결단을 내렸다. 이렇게 민주적 정당성을 갖고 개방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위원회 활동을 제대로 평가하거나 양형 기준의 시행에 관한 분석도 해보지 않은 채 막연히 문제가 있다는 식의 법안 발의는 입법적 다수의 횡포다. 위원회를 대통령이나 국회에 두자는 제안은 양형이 본질적으로 사법작용에 속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설치 3년이 지났는데 막대한 예산만 낭비한 채 진척이 없다는 여당의 지적에는 말문이 막힌다. 양형위원회는 출범 이후 외국 입법례를 검토하고 공청회를 거쳐 우리나라에 적합한 양형 기준제를 모색하였고, 1기 양형위원회가 제시한 8개 범죄의 양형 기준은 무려 97개 범죄구성 요건을 포함하는 것이다. 지금 시행되고 있는 살인죄의 양형기준을 예로 들어보자. 살인죄의 법정형은 징역 5년 이상이다. 이 폭 넓은 법정형을 9개 구간의 양형 기준으로 나누어 법관의 재량의 폭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양형 기준이 권고적 효력을 갖고 있음에도 법관의 양형 기준 준수율은 90%가 넘는다. 법관 재량의 폭이 줄어들어 양형의 편차와 불균형이 시정되고 있다는 의미다.
사법작용 본질과 어긋나
민주국가에서 법률은 국민의 의사이다. 국회는 국민의사를 표현하는 기관이며, 국회는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다. 선거구민에 의해 선출되었지만 그 지역구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정당에 소속되어 있지만 그 정당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기관이 아니다. 전직이 법조인이었다고 해서 그 직역을 대변해야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소속 정당이나 지역구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 그래야 국회의원은 좋은 입법의 발의자로서 입법 활동 우수의원으로 평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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