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G20 정상회의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회의 기간에 국가 정상들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세계 굴지의 기업과 경제단체 대표들이 모이는 비즈니스 서밋도 열렸다. 여기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크다. 반면에 때맞춰 열린 노동조합 정상회의에는 관심이 덜 한 것 같다.
이번 노조 정상회의에서는 '서울선언'도 채택했다. 핵심 주제는 고용이다. 출구전략을 위해 재정지출을 삭감하지 말 것, G20 고용실무그룹을 설치하여 고용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사람에 투자할 것, 금융 투기를 억제하고 금융거래세를 도입할 것 등 구체적인 요구사항도 선언에 포함돼있다. 노동조합으로서 할 수 있는 요구이고 의미 있는 내용도 많다.
요구만 있고 각오는 없어
그러나 아쉬운 부분이 있다. 노동조합은 고용위기 극복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요구사항만 있을 뿐, 고용 창출을 위해 노동조합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결의는 보이지 않는다. 7월에 확정된 한국노총의 '미래 고용전략과 일자리 대책'의 내용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정부 정책과 재정 확대나 기업의 책임성 강화에 대한 내용뿐이고, 노동조합의 역할과 각오는 찾아볼 수 없다.
이제 한국의 노동조합도 새로운 노동 운동의 비전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한국 노동 운동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동조합도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야만, 점점 힘을 잃어가는 노동 운동이 다시 부활할 수 있다.
첫째, 취약 근로계층 보호를 위한 노동조합의 자체적인 노력은 무엇인가? 중소기업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대기업의 하청 단가 인상을 요구하기 이전에, 대기업 노조의 임금 양보 노력도 있어야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 동안 비정규직을 조직화하려는 노동운동 노력이 미흡했다는 반성이 있어야 한다.
둘째, 정년 연장을 요구하기 이전에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노동조합이 한 일은 무엇인가? 현재 취업해 있는 조합원들은 표를 갖고 있으니, 그들을 위해서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그러나 정년 연장이 만약 청년층의 신규 채용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신중하게 접근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2월의 노사민정 대타협에서도 임금 양보를 통해 정규직 고용을 보호하려는 노력만 보였을 뿐, 비정규직과 청년층의 고용 위기에 대한 해법은 없었다.
셋째, 산업화 사회에서 지식경제 시대로 전환되고 서비스화가 진전되면서, 노동 계층내 이질성 또는 다양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런데 노동조합은 노동자 연대를 위해 어떠한 비전을 갖고 있는가? 특히 내년에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사업장내에 직종별로 별도의 노조가 결성될 확률이 높다. 그럴 경우, 교섭단위 분리와 교섭 창구 단일화를 둘러싸고 노-노간, 노-사간 갈등이 심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사업장내 노사관계는 혼란스러워질 것이고, 노동조합 세력은 분열되어 힘이 빠질 가능성이 크다.
노동운동의 역할 고민을
마지막으로, 노동조합도 '생산'에 책임을 져야만 한다. 고용 창출은 정부의 재정이나 기업의 책임감만으로 계속 유지될 수 없다. 기업의 경쟁력이 고용의 토대라는 사실은 이미 상식이다. 작업장 혁신을 주도하는 노조가 있을 때, 생산 물량도 지킬 수 있고 새로운 고용도 창출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한국 노동 운동을 기대한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와 노동운동 자체를 위해서다. 반도체 디지털TV 등 세계 최고수준의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에 버금가는 '명품 노동운동'을 만들어, 한국의 노동조합은 G20이 아니라 G7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종훈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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