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만에 칠족령을 다시 오른다. 아리수길 11코스는 지난 10코스의 일부 구간을 다시 더듬는다. 제장에서 시작해 칠족령까지 올라선, 하늘벽유리다리쪽이 아닌 문희마을로 내려선다. 그리고 강길을 따라 한없이 편안한 걸음을 걷는 코스다.
제장에서 다시 만난 동강. 가을 동강은 비취빛 호수다. 투명한 강물을 노란 단풍을 두른 산자락이 감싸 안았다. 물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바람도 멎었다. 들리는 건 발끝에 채이는 낙엽소리뿐이다.
산길 초입엔 바닥의 잎들이 파랗다. 단풍도 들기 전 떨어진 이파리들이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바닥은 누런 가을 색으로 물들었다. 낙엽을 밟는다. 발 밑에서 가을이 스친다. 속절없는 시간이 부서져 내린다.
칠족령 전망대에 섰다. 산태극 수태극으로 휘돌아 나가는 전경이 뿌연 안개 속에 파묻혔다. 노랗게 물든 단풍의 절경을 기대하고 왔건만 아쉽게도 안개가 가로막았다. 높이 솟은 성황나무에 인사를 하곤 고개를 넘었다. 문희마을로 가는 길이다.
칠족령 고갯마루부터 지역이 바뀐다. 이제 정선군에서 평창군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고개에 오르자 그제서야 바람이 한 자락 불었다.
제장서 칠족령까지 오르는 길은 조금은 가파른 경사로 숨을 헐떡여야 했는데, 칠족령에서 문희마을로 이어진 산길은 한없이 뉘여 있어 편안하다. 커다란 돌탑 사이를 지나고, 고대의 산성 흔적인 돌무더기도 지난다.
나뭇가지에서 가을을 수놓던 이파리들이 산길 가득 누런 물감을 뿌려놓았다. 동강을 감싼 산자락 안에 늦은 가을이 한가득이다. 칠족령에서 문희마을까지는 1.7㎞. 길지 않은 산길은 편안하다.
이윽고 숲을 벗어나 마을에 도착했다. 강가의 작은 마을이다. 예전엔 흙벽으로 지은 담배 건조창고와 슬레이트로 지붕을 얹은 허름한 집들만 있던 곳이었는데, 동강의 유명세에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마을도 많이 바뀌었다. 국적 불명의 펜션 건물들이 여기저기 솟았다.
문희마을 입구엔 백룡동굴생태체험학습관이란 커다란 건물도 들어섰고, 대형버스 대여섯대와 승용차 수십여대 들어찰 수 있는 너른 주차장까지 생겼다. 이젠 더 이상 예전의 그 강마을이 아니었다.
문희마을부터 강길을 따라 걷는다. 지나는 차도 별로 없어 한산하다. 동강을 왼쪽 옆구리에 끼고 걷는 걸음이다. 등 뒤의 산자락은 짙노란 단풍이 깊게 물들었다. 빨간 칠을 한 나룻배 하나가 강변에 올라서있다. 지금도 강 건너로 사람을 나르고 물건을 나르는 배다. 가을 햇살만 내려앉은 빈 배는 동강의 정적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강물이 한 굽이 크게 휘도는 지점, 길 모퉁이에 커다란 소나무 몇 그루 큰 그림자를 드리웠다. 강 저편은 기암과 단풍이 어우러졌다. 문희마을에서 마하리 본동으로 가는 길 가장 아름다운 포인트가 될 것이다.
강물엔 큼지막한 바위 몇 개가 초록 물 위에 떠있다. 강물의 옥빛에 이끌려 물가로 내려섰다. 한참을 돌밭을 걸어 물가에 섰다. 이제서야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들을 수 있는 동강의 목소리. 푸른 속삭임이다.
강가의 커다란 바위들의 생김새가 기묘하다.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이었다. 큰 바위덩어리는 동글동글한 무늬로 가득했다. 작은 조약돌들이 뭉친 상태로 퇴적돼 이리 큰 바위를 만들어냈나 보다. 혹시 동강의 물줄기가 작은 돌들을 그러모아 반죽을 하듯 쳐대 저 큰 덩어리로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까. 헛된 상상을 해본다.
강길을 따라 다시 가을 서정을 만끽하며 걷는다. 어느덧 해는 산자락 뒤로 넘어가 버렸다. 해가 짧아진 것을 보니 겨울이 코앞이다. 마하리 본동마을 거의 다 왔을 때 강길 옆에 설악산 흔들바위를 닮은 둥글고 커다란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바위 옆엔 안돌바위란 안내판이 붙었다. 바위에는 상류의 황새여울에서 뗏목을 운반하던 뗏꾼이 물에 빠져 죽은 뒤, 아내가 남편을 찾으러 가다 바위를 안고 돌다 강에 빠져 숨졌다는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 바위 앞엔 이를 기리기 위한 뗏꾼부부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평창=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원시 아름다움 간직한 백룡동굴
문희마을 한가운데엔 백룡동굴생태체험학습장이 자리하고 있다. 올 여름 일반에 개방된 백룡동굴 탐방을 위해선 이곳을 들러야 한다.
백룡동굴 답사는 관광이 아니라 탐험에 가깝다. 백룡동굴은 일반에 개방된 다른 동굴과 달리 동굴 안에 조명이나 안전 난간 등이 전혀 설치돼 있지 않다. 머리에 달고 들어가는 헤드랜턴 불빛에만 의존한다. 동굴을 들어가기 위해선 또 옷과 신발을 벗고 준비된 탐험복과 장화로 갈아입고 신는다. 때론 바닥을 기어야 하고, 물 웅덩이를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 가이드의 인솔 하에 동굴 답사가 진행된다.
마을을 지나 강가에서 수직에 가까운 철계단을 오른다. 다시 산자락 절벽을 따라 이어진 데크를 타고 10분 가량 이동해야 동굴 입구에 다다른다. 굳게 닫힌 철물을 열고 들어가면 동굴의 음습한 기운이 온 몸을 휘감는다.
개구멍으로 불리는 통로를 지날 때는 낮은 포복으로 전진해야 한다. 구멍을 빠져나오면 형형색색의 종유석과 석순, 석주가 가득한 공간을 만난다. 동굴의 끄트머리엔 대형 광장이 있다. 이곳엔 달걀프라이를 닮은 석순 군락이 펼쳐져 있다.
가이드는 이쯤에서 암흑체험을 권한다. 모두 랜턴을 끄고 불빛 하나 없는 공간을 느끼는 것이다. 눈을 감았을 때 보다 더 컴컴한 어둠. 질리도록 몸서리쳐지는 암흑이다. 전체 답사 코스는 왕복 1.5㎞, 대략 1시간 30분 가량 걸린다. 하루 9회 답사가 진행되며 1회차에 20명 이내, 하루 최대 180명만 입장 가능하다.
입장료 어른 1만5,000원, 청소년 1만원, 1회 20명씩 하루 180명만 답사할 수 있다. 예약은 필수다. 백룡동굴 생태체험학습장 www.maha.or.kr (033)334-7200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여행수첩/ 아리수길 11코스
아리수길 11코스는 강원 정선군 신동읍 덕천리 제장마을에서 시작해 칠족령을 넘어 평창군 미탄면 문희마을로 내려와선 강길 4.5㎞를 걸어 마하리 본동까지 이른다.
제장마을에서 문희마을까지 고개를 넘는 데는 1시간 가량 걸리고, 문희마을에서 마하리 본동까지는 1시간~1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제장마을까지는 중앙고속도로 제천IC에서 나와 5번 국도를 거쳐 38번 국도로 갈아타고 영월읍을 지나 신동까지 간 후, 동강길을 따라 정선읍 방향으로 가다 보면 제장마을 입구를 만난다.
마하리를 통해 바로 문희마을로 먼저 갈 경우엔 영동고속도로 장평IC에서 나와 31번, 42번 국도를 갈아타고 평창읍 미탄면을 거치는 것이 빠르다. 승우여행사는 13, 14일 출발하는 아리수길 걷기(11코스) 참가자를 모집한다. 오전 7시 서울 광화문에서 출발해 당일로 다녀오는 일정이다. 참가비 4만5,000원. 교통비, 점심식사 등이 포함됐다. (02)720-8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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