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상이나 기업인들이 모이는 만찬 자리에선 으레 건배주가 화제다. 12일 막을 내린 서울 G20 정상회의에선 미국 나파밸리의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 ‘온다도로’(‘황금의 물결’이라는 뜻)가 만찬주로 선택돼 시선을 모았다. 와인 애호가가 늘면서 코스 하나 하나마다 잘 어울리는 와인을 곁들여 즐기는 저녁행사도 심심치 않게 열린다.
그렇다면 한식은 어떨까. 맵고 짠 간이 많은 한식은 음식 맛과 술 맛을 서로 살릴 수 있게 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나 25년 경력의 와인 전문가인 롯데호텔서울 공승식 소믈리에는 “와인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한식 맛을 풍성하게 할 와인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최근 롯데호텔 한식당 무궁화 리뉴얼 오픈을 맞아 구비한 와인 350종 중 특히 한식메뉴와 잘 어울리는 43종의 추천 와인 리스트를 뽑았다.
한식에 맞는 와인을 고를 때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요리의 주된 맛을 내는 양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붉은 고기엔 레드 와인, 생선엔 화이트 와인이 맞는다고 공식처럼 알고 있다. 하지만 한식은 주재료보다 양념맛이 더 강해서 이 공식이 꼭 맞지 않는다. 무궁화의 임성준 소믈리에는 “가령 어류라 해도 달짝지근한 양념을 한 장어구이에는 화이트 와인보다 레드 와인이 어울리며, 육류라 해도 기름기가 있는 삼계탕에는 신맛과 과일향이 강한 소비뇽 블랑을 매치시키면 산뜻하게 삼계탕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낙지볶음, 고추장불고기, 두루치기 등 매운 양념의 한식 메뉴는 와인과의 매치가 가장 까다롭다. 이처럼 매운 음식을 감싸주는 데에는 카베르네 쇼비뇽, 쉬라처럼 떫은 맛을 내는 탄닌이 많고 무거운 느낌을 주는 품종이 제격이다. 공씨는 프랑스산 ‘레 끌로 로라뚜아르 데 샤또네프 뒤 파프’와 칠레산 ‘몬테스 알파 쉬라’를 추천한다. 임씨는 미국 나파밸리에서 한국인이 만드는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의 ‘바소’를 추천한다. 공씨는 “매운 음식에는 샤도네와 같은 화이트 와인은 오크향이 두드러져 오히려 부담스러워진다”고 조언했다.
탄닌의 떫은 맛은 매운 맛은 감싸주지만 짠 맛이 강한 음식과는 상극이다. 간이 짜면 짤수록 알코올과 탄닌이 강하게 느껴져 자극적인 맛을 느끼게 된다.
갈비찜이나 장조림처럼 설탕을 넣고 장시간 조린 요리에는 상큼하고 살짝 달짝지근한 진판델이 어울린다. 미국산 ‘세게지오 진판델’과 프랑스산 ‘마르케스 드 샤스’를 추천하는 공씨는 “진판델의 풋풋한 과일향이 졸이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재료의 본연의 맛을 찾아준다”고 설명한다.
생선요리는 생선 종류도 따지지만 달걀과 밀가루를 입혀 전을 만들었느냐, 간장양념을 했느냐 등에 따라 또 달라진다. 훈제연어, 참치 등 붉은 생선에는 로제와인이 잘 어울린다. 장어구이 같은 경우 가벼운 레드 와인으로서 피노 누아가 좋다. 생선전은 부드러운 멜로, 양념 없이 구운 생선구이엔 산미와 떫은 맛이 적당히 있고 숙성된 향이 강한 화이트 와인 샤도네가 좋다. 조개탕이나 지리 같은 맑은 탕에도 샤도네가 어울린다. 공씨의 추천은 칠레산 ‘몬테스 알파 샤도네’와 호주산 ‘보글 샤도네’.
또한 양식에서는 입맛을 정리하는 후식으로 단 음식과 단 맛의 와인을 즐기는데 후식이 크게 발달하지 않은 한식에도 이런 종류가 무난하다. 임씨는 아이스 와인이나 스파클링 화이트 와인을 추천한다.
공승식 소믈리에는 “일반적으로 구절판처럼 여러 가지 맛이 섞인 한식 메뉴에는 산뜻하고 약간 신, 달지 않은 화이트 와인이나 탄닌의 떫은 맛이 약간 나는 가벼운 레드 와인이 좋고, 삼겹살에는 가벼운 레드 와인이 적당하다”고 말한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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