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이 또 늦춰지면서 막판 발목을 잡고 있는 의제가 쇠고기라는 얘기가 정부 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지금까지 쇠고기가 단 한 번도 협상 테이블에 오른 적이 없다"던 정부의 공식 멘트와는 정면 배치된다. 막판에 정말 미국이 쇠고기 카드를 강력하게 꺼내 든 것일까, 아니면 정부가 자동차와 쇠고기의 빅딜을 부각시키기 위해 애드벌룬을 띄우는 것일까.
쇠고기 암초 되살아났다?
한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0일. "사실상 타결됐다"는 일부 예상에도 불구하고, 정부 내에서는 여전히 신중하고 무거운 기류가 팽배했다. 이날 통상장관회의가 시작되기도 전인 오전부터 "협상이 결코 순항하는 게 아니다"는 얘기들이 나왔다.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협상의 암초가 쇠고기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 정부 고위관계자의 입에서 "미국의 쇠고기 압박이 상당히 거세다" "미국은 젖소를 많이 키우는 주의 의원 이름까지 거명하면서 비준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는 구체적 정황까지 흘러나왔다.
이렇게 미국이 막판에 쇠고기 카드를 강하게 꺼내 들면서 우리 정부도 "쇠고기 문제를 의제로 삼으면 더 이상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고 맞대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김황식 국무총리도 이날 국회 긴급현안질의 답변에서 "미국이 쇠고기 문제도 협의하기를 요청하는 게 현실"이라며 "하지만 쇠고기에 대해 우리나라는 단호한 입장으로 논의를 배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이런 얘기들이 사실이라면, 11일 정상회담에서도 한미 FTA 타결이 실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정부는 누차 "쇠고기와 FTA는 별개 문제"라고 밝혀 온 상황. 만약 쇠고기에 대해 일부라도 양보하는 경우 '제2의 촛불사태'까지도 감수를 해야 하는 처지에서, 미국측 요구를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이 경우 미국측이 쇠고기 압박을 거둬들이든지, 아니면 FTA 협상이 깨지든지 둘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현재로선 (타결이) 상당히 불투명하다"며 "미국이 크게 양보하지 않는 한 (타결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쇠고기는 비판 여론 잠재우기용?
하지만 의혹의 눈길도 적지 않다.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최석영 FTA 교섭대표가 공식 브리핑에서 "쇠고기 문제는 아직 협의가 이뤄진 바 없다"고 밝힌 터. 따라서 미국이 협상시한을 넘긴 이날에서야 느닷없이 쇠고기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오는 게 "정부가 쇠고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자동차 부문에서 일부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 한다는 해석이다. 자동차 부문에서 굴욕 협상을 했다는 비판이 비등해지자, 사전에 방패막을 치고 나섰다는 설명이다. 한 통상 전문가는 "쇠고기와 자동차를 어렵게 빅딜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고 말했다.
자동차는 상당폭 합의 관측
자동차 분야는 한국의 양보로 상당 부분 합의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연비, 온실가스 배출 등 미국이 비관세 무역장벽이라고 주장하던 우리나라의 환경규제에서 한국이 대폭 양보했고 ▦제3국에서 수입된 부품을 이용해 만든 완성차를 미국에 수출할 경우 한국 정부가 수입 부품에 대해 업체에 돌려주던 관세환급(duty drawback) 상한도 한ㆍ유럽연합(EU) FTA 수준인 5%로 제한키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 졌다. '연간 6,500대 미만'판매되는 자동차에만 허용된 안전관련 자기인증 범위도 연간 판매대수 1만대로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쪽은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같은 협의 내용을 담는 그릇도 "협정문에는 점 하나 고칠 수 없다"는 한국의 입장이 반영돼 협정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양해각서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지금 당장은 미국이 양보하지만 발효 이후 매년 열리게 될 FTA 이행위원회에서 재논의, 협정문 수정을 통해 한국이 차후에 미국의 요구 사항을 수용하는 방식도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정상이 약속한 이상 11일 정상회담에서 타결가능성은 여전히 높아 보인다. 하지만 양국 모두 국내적 운신폭이 넓지 않아 최종합의를 미루고, 다시금 지루한 협상으로 가는 상황도 배제할 수는 없어 보인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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