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선언’을 도출해내기 위한 20개국의 막판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차관회의와 셰르파(교 섭대표)회의가 열리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 회의장엔 치열한 기싸움과 격론, 때론 고성까지 오고 갈 정도다. 경상수지 수치 목표 도입이 수포로 돌아간 상황에서 조기경보체제 등 이런 저런 대안이 거론되지만 구속력 있는 환율 해법을 도출해내기는 역부족이다.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환율 전쟁 종식의 장이 되길 바라는 우리의 기대와 달리, 서울 회의 뒤에도 환율 갈등 재연은 불가피해 보인다.
코엑스는 환율 전쟁터
8일부터 시작된 차관회의, 셰르파회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격렬해지는 분위기다. 금융규제 개혁,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 개발 이슈, 국제금융기구 개혁 등 대부분의 사안은 대체로 큰 이견이 없지만, 환율과 경상수지 문제는 전혀 다르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환율과 경상수지 문제에 대해서는 차관들이 본국에서 강한 지침을 받아 온 걸로 보인다”며 “아무리 회의를 해도 원론적인 입장만 서로 되풀이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현장 분위기에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확인된다. 9일 저녁 환율과 경상수지를 다루는 프레임워크 세션에서는 참석자 간에 고성까지 오가면서 열기가 뜨거워져 아예 문을 열어놓고 회의를 진행했을 정도. 차관회의는 오전 10시에 시작돼 자정이 되어서야 끝났고, 같은 시간에 시작된 셰르파회의도 10시50분에 끝났다는 후문이다. 한 참석자는 “좁은 회의실에 40~50명의 참석자들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다 보니 언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환율 전쟁터가 코엑스로 옮겨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벌써 사흘 째 마라톤 회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각국은 입장 차이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첨예한 이슈들은 지금까지도 공란으로 비워져 있는 상태. 김윤경 G20 정상회의준비위원회 대변인은 “차관회의에서 경상수지 가이드라인,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 경쟁적 환율 절하 자제 등 모든 문제가 테이블에 올랐으나 각국의 입장 차가 심해 결국 관련 부문을 공란으로 남겨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환율 휴전? 종전?
그 동안 의장국인 우리 정부와 미국은 환율 갈등에 종지부를 찍을 해법으로 경상수지 목표제(경상수지 흑ㆍ적자를 GDP의 일정비율로 제한) 도입에 집착해 온 상황. 하지만 독일 등의 강력한 반대에 이번 회의에서 수치 목표를 도입하는 건 물 건너 갔다. 미국측은 부랴부랴 이를 대신할 해법으로 경상수지 흑ㆍ적자가 과도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미리 예방 조치에 나서는 ‘조기경보체제’도입 등을 제시하고 있지만, 어떤 형태가 됐든 구속력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국책연구기관 한 관계자는 “애당초 경상수지를 수치로 억제하겠다는 발상부터가 무리한 측면이 많았다”며 “조기경보체제 도입 등 다른 대안들은 선언적인 수준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결국 ‘서울 선언’에서는 ▦경상수지 수치 목표는 내년 파리 정상회의까지 도출하고 ▦조기경보체제 등의 보완 시스템을 마련하고 ▦시장 결정적 환율제 이행 등 경주 합의를 재확인하는 정도의 합의가 나오는 것이 유력한 상황. 경주 회의보다는 한 걸음 정도 더 진전됐다는 점에서 일정 정도 점수를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환율 갈등을 억제하는 실질적 효과는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당장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에 대한 각국의 반발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상들의 원론적 합의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G20 환율 합의의 배경과 전망’ 보고서에서 “미국, 일본 등의 추가 양적 완화를 통한 유동성 공급이 지속되고 신흥국의 환율 방어가 맞서면서 내년 상반기까지 글로벌 환율 전쟁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 회의로 일시적인 휴전 국면이 만들어질 수는 있을지언정, 환율 종전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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