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지고 연말 술자리가 잦아지면서 감기몸살과 만성피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단순히 감기나 숙취 때문이라면 다행이지만 간염 증상일 수도 있다. 간염은 한번 걸리면 잘 낫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간경변과 간암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간염은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간염에 걸렸다면 철저히 관리해 간질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간경변과 간암으로 이어지는 간염
간염은 간에 염증이 생겨 간 세포가 손상되는 질환이다. 염증 원인은 바이러스 침투나 과음, 잘못된 약 복용, 비만 등 다양한데, 그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바이러스 침투로 인한 염증이다.
간염 바이러스는 크게 A, B, C, D, E형이 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A, B, C형 간염이다. A형 간염은 급성 형태로만 발병해 한 번 앓고 나면 항체가 생겨 재발하지 않는다. 하지만 B형과 C형은 급성인 경우에는 자연적으로 치유돼 항체가 생기지만, 6개월 이상 병이 낫지 않는 만성이 되면 간경변이나 간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C형은 만성화될 확률이 55~85%로 높고, 예방 백신도 없으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B형은 만성화될 확률이 C형보다 높지 않지만 모태에서 감염됐다면 90%가 만성으로 이어지고, 어려서 앓을수록 만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B형 간염 백신은 생후 2개월 이내에 맞는 것이 좋으며, 산모가 간염 환자인 경우에는 태어나자마자 접종을 해야 한다.
급성 간염은 열이 오르고 오한이 나는 등 감기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 반면 만성 간염에는 피로, 두통, 소화불량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증상이 없다가 간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뒤에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B형 간염, 만성 간질환의 주범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 중 60~70%가 B형 간염 보균자이며, 특히 간암환자의 75%가 B형 간염 보균자다. 전체 인구의 5~10%가 만성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라는 통계도 있다. 지난해 질병관리본부에 보고된 신규 B형 간염 환자는 5,560명에 이른다.
유병철 대한간학회 이사장(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은 “만성 B형 간염의 17%가 간경변으로 진행되고 국내 간암 환자의 50~70%가 B형 간염 바이러스(HBV)에 감염돼 있다”며 “B형 간염 환자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도 최소 6개월마다 정기적으로 검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건강한 사람은 간수치(ALT/AST)만 확인해도 무방하지만, B형 간염 환자는 바이러스 활성도를 알 수 있는 DNA 검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까닭 없이 피로하거나 소화불량, 잇몸 출혈 등의 증세가 나타나면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 또 매년 정기검진을 통해 간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간염은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하면 50% 이상은 별 문제가 없다.
간염은 보균자 산모가 출산할 때나 혈액, 침, 분비물 같은 체액을 통해 전염된다. 찌개를 함께 먹거나 술잔을 돌리는 우리나라의 고유 문화로 인해 간염 발생률이 높다는 설이 있는데, 잘못된 속설이다. 침에 들어있는 간염바이러스가 혈관으로 침투될 때에만 전염되기 때문이다. 만성 간염을 이겨내려면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속설이나 민간요법에 혹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때문에 오히려 간 손상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 유 이사장은 “우리나라 사람은 검증되지 않은 일부 건강기능식품과 간에 좋다고 헛개나무, 민들레, 영지버섯, 상황버섯, 인진쑥 등 민간요법에 더 많이 의존하는데, 이는 오히려 간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A형 간염, 20~30대 젊은 층이 집중적으로 걸려
불결한 환경에서 잘 걸려 ‘후진국병’으로 불리는 A형 간염이 최근 젊은 층에서 크게 늘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배시현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A형 간염은 1980년대만 해도 국민 대부분이 항체를 보유했지만 현재 국민 항체 보유율은 10%를 밑돌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A형 간염 발생률은 인구 10만명 당 62.4명으로 매우 높지만, 수도권 지역의 20, 30대 젊은 층에서 높은 발병률을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지난 2009년(1만 5,231명의 환자가 발생)보다 올해는 발생 빈도가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발병률이 높으며, 이 같은 수준은 2028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A형 간염은 장티푸스나 콜레라처럼 입으로 옮는 전염병으로 오염된 음식이나 음료수를 통해 주로 전염된다. 오염된 식수로 씻은 샐러드나 과일 등을 먹거나 오염된 물에서 채취한 어패류를 날로 먹어 감염될 수 있다. 감염 환자의 침과 대변을 통해 쉽게 전파되므로 단체생활을 하면 감염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다행히 A형 간염 바이러스는 85도에서 1분 동안 끓이거나 물을 염소 소독하면 죽는다. 이준혁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따라서 “음식을 완전히 익혀 먹는 것이 예방의 지름길이며, 식사 전이나 외출 뒤 손을 비누로 깨끗이 씻는 등 개인위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A형 간염은 어릴 때 감염되면 거의 아무런 증상 없이 치유된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증상이 심해져 40대 이상은 2%, 60대 이상은 4%가 사망한다. A형 간염도 B형 간염처럼 예방백신 접종으로 예방할 수 있다. 1세가 넘으면 예방 접종을 할 수 있고, 접종 후 6~12개월 뒤에 추가 접종하면 된다. 이르면 다음 달 제1군 법정 감염병으로 등재된다. 내년부터 생후 12~23개월 영유아 대상으로 소아필수예방접종이 추진됐지만, 정부의 관련 예산이 책정되지 않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C형 간염도 꾸준히 늘고 있다. 2002년 1,927명이던 환자가 지난해 6,407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질병관리본부). 손톱깎이, 칫솔, 면도기 같은 혈액이 묻을 수 있고 피부에 상처를 줄 수 있는 생활용품을 통해서도 전염될 수 있다. C형 간염도 감염 초기에는 대부분 증상이 없지만 만성 간염이나 간경변증, 간암 등으로 악화한 뒤에야 뒤늦게 발견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