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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치, 도덕을 기대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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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치, 도덕을 기대하지 말라

입력
2010.11.10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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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목회 사건으로 불거진 국회의원에 대한 검찰의 수사 소식을 접하면서 국민들은 또 다시 정치에 대한 혐오를 느끼고 있다. 오랜만에 여야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최근 SBS드라마 '대물'에서 정치를 사리사욕을 위한 수단으로 묘사하고, 흑백논리를 바탕으로 정의로운 여성정치인을 등장시킴으로써 정치에 대한 반감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정치를 도덕적 잣대로 평가하고 선과 악을 뚜렷이 구분하고 있다.

의원을 긴장시키는 유권자 평가

동ㆍ서양을 막론하고 왕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지도자의 도덕적 덕목이 강조되었다. 왕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왕의 자비로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애초부터 정치인을 믿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결코 공동체나 남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보다 전체를 우선 배려하는 존재라면 정치가 필요 없는 것이다.

개인들이 갖고 싶어 하는 재화는 유한한데, 개인들의 욕구는 무한하기 때문에 여기서 발생하는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서 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정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보편적으로 인용되는 것이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이스턴(D. Eastern)의 정의이다. 여기에는 개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우선 챙기려 하며, 국가의 개입이 없다면 무한한 욕구를 가진 개인들 간의 갈등이 해결되기 힘들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에서는 사회적 가치를 배분할 수 있는 권위체를 잘 선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선거이다.

이러한 논리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개인들의 높은 도덕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다양한 개인들은 자신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정치인을 원하며, 재선을 근본적인 동기로 갖는 국회의원들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지역구를 보살피고 의정활동에 열심히 참여한다. 국회의원들을 긴장시키는 것은 유권자들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이며,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도덕적 규범에 따를 뿐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정치구조를 너무 매정하게 규정하는 것 같지만, 민주주의에서 정기적으로 선거를 실시하는 것도 권력을 부여 받은 정치인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속성상 더 많은 권한을 집중하려 하며, 지속적으로 누리려는 경향이 있음을 민주주의 창시자들은 간파한 것이다. 서구정치학의 분석틀에서 보자면 정치에 도덕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정치인이나 개인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할 뿐이다.

정치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정치판에서 경쟁을 하고 있다고 본다면 고상한 도덕적 행동을 기대할 수 없다. 더욱이 도덕적 평가가 옳음과 그름으로 구분되는 것이라면 정치와는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치의 기본원칙은 타협이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코 정치인들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을 믿었다가는 국민들이 낭패를 본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니다. 1992년에 미국의 전ㆍ현직 의원들 350명이 의회은행에 잔액이 없으면서도 개인수표로 2만 달러 이상을 사용했던 일이 밝혀지면서, 다음 선거에서 현역 의원들이 대거 낙선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기부금 등 현실적 문제도 검토를

걱정되는 것은 가장 세속적인 정치에 타협의 여지가 없는 도덕의 잣대를 들이댈 때, 정치의 경직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도덕성보다 정치의 영역과 특성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정치기부금 제도가 현실적인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 헌법의 기초를 만든 매디슨(J. Madison)이 "모두가 천사라면 헌법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한 말의 의미를 새겨본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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