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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 미 인' 미국판, 2008년 스웨덴판과 비교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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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 미 인' 미국판, 2008년 스웨덴판과 비교해보니

입력
2010.11.1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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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개봉한 ‘렛 미 인’은 극장가에 파란을 일으켰던 스웨덴 영화다. 수입 가격은 단돈 1만달러였으나 관객은 10만명에 달했다. 스웨덴 소설가 욘 린드크비스트의 베스트셀러를 스크린으로 옮긴 이 영화는 뱀파이어 소녀와 외톨이 소년의 가슴 저린 사랑을 섬세한 터치로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같은 이름의 영화가 18일 극장가를 찾는다. 소설 판권을 별도로 계약해 ‘클로버 필드’의 맷 리브스가 연출한 할리우드판이다. ‘킥애스’에서 어린 킬러 힛걸 역을 연기하며 할리우드 스타를 예약한 클로이 모레츠가 12세 뱀파이어 소녀 애비(스웨덴판은 이엘리)로 출연한다.

나이든 남자와 함께 이사온 정체불명의 소녀가 옆집 소년과 조심스레 교감하며 종을 넘어선 사랑에 이른다는 이야기 줄기는 스웨덴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리 원작이 같다지만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비슷한 장면도 여럿 있다. 하지만 작은 차이가 스웨덴판과 다른 정서의 결을 만들어낸다. 귓전을 때리는 적절한 음향효과 등 기술적인 세련도도 돋보인다. 자신과 전혀 다른 위험천만의 뱀파이어에게 마음을 여는 소년, 피를 좇는 본능을 견디며 소년을 받아들이는 소녀의 사연이 서스펜스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스웨덴판을 안 보았다면 가슴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배경은 미국 뉴멕시코주 로스알라모스로 옮겼다. 스웨덴판처럼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곳이다. 스웨덴판은 딱히 시대를 드러내지 않지만 할리우드판은 1983년으로 못을 박는다.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작은 흑백 브라운관을 통해 “적이 만연해 있다”고 주장하고, ‘밤 10시 당신의 자녀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라는 경고문구가 TV화면을 장식하는 시대다. 냉전이 절정을 이루던 시절을 배경으로 깔며 영화는 사람들 사이의 단절과 외부인에 대한 배제를 강조한다.

지독하리만치 고독을 씹는 소년 오웬(코디 스밋 맥피ㆍ스웨덴판은 오스칼)의 모습도 좀 다르다. 그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급우 3명의 등장은 동일하다. 그러나 스웨덴판과 달리 남편과 별거중인 엄마(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묘사되는데 얼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는 오웬을 돌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오웬이 연심을 드러낼 때 애비의 반응도 눈여겨볼 지점. 스웨덴판에선 “난 평범한 여자애가 아니야”라고 주의를 주지만 할리우드판에선 “난 여자가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더욱 강도 높은 경고를 던진다. 피를 게걸스레 탐닉하는 애비의 모습도 이엘리보다 더욱 광포하다. 대결의 시대에 철저히 혼자인 오웬과 훨씬 폭력적인 뱀파이어 애비의 만남은 사랑의 애절함을 극대화시킨다.

오웬과 애비가 열차를 타고 정처 없이 길을 떠나는 모습은 이 영화의 어두운 일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스웨덴판의 오스칼과 이엘리가 탄 열차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해가 지는 서쪽에서 뱀파이어가 싫어할 해가 뜨는 동쪽으로 향하는 모습은 두 사람의 미래에 엷은 희망을 비춘다. 반면 할리우드판 속 열차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한다. 서쪽으로 향하는 그들의 여정은 컴컴한 운명의 터널을 향하는 듯하다.

애비와 함께 살던 50대 남자의 지치고 지친 모습도 영화의 어둠을 더욱 짙게 한다. 어린 시절 애비를 만나 신선한 피를 구해다 주며 홀로 늙은 것으로 여겨지는 이 남자는 “이젠 지겹다”고 하기도 하고 “(경찰에) 잡히고 싶은 건지 모르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랑의 구속에서 벗어나고픈 이 남자는 오웬의 비극적 미래이기도 하다. 애비가 오웬에게 던지는 대사와 50대 남자의 짧은 유언은 이 기이한 커플의 기구한 운명을 명확히 한다. “난 사라져서 살거나 머물러서 죽어야 해.” “애비, 정말 미안해.” 1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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