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찬(가명)씨는 최근 반상회에서 신건강(가명)씨 부부와 이야기 도중 출산에 관해 언쟁을 했다. 신씨 부부가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것도 행복하다는 식으로 말하자, 이씨가 신씨 부부의 행동이 사회적 관점에서 이기적이라고 맞불을 놓으면서 시작된 충돌이었다. 이후 이씨는 신씨 부부가 한 얘기를 동네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고, 신씨 부부는 동네에서 ‘특이한 사람’ ‘몰지각한 사람’이라 낙인 찍혔다. 결국 신씨 부부는 이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씨도 신씨 부부가 사회적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다며 맞고소했다.
이는 실제상황은 아니다. 건국대 법학, 간호학을 전공하는 교수와 대학생들이 젊은이들의 결혼 및 출산기피 문화를 비판하고 행복한 다자녀가정 꾸미기의 소중함을 알리는 이색 모의재판의 내용이다.
10일 오후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모의법정에서 열린 저출산 상황극 ‘DINK 모의재판’에선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자녀를 갖지 않고 맞벌이를 하는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족 부부의 사회적 의무 위반에 대해 기각결정이 내려졌다. 또 신씨 부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고소한 이씨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저출산 문제의 해결방안을 개인(신씨 부부)에게만 책임지게 하면 안 된다는 입장과 (이씨가) 정확한 사실을 말했으므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도 않는다는 취지였다.
모의재판 연출을 맡은 성수흔씨는 “어떤 게 옳다 그르다 보다는 이 시대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하는 마음에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모의재판을 본 관객들은 출산의 사회적 의무보다 개인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는 데는 대부분 공감했다. 반면 명예훼손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건국대생 김모(21)씨는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재미있게 그린 점이 인상 깊었다. 결혼과 출산문제는 역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인식돼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최모(26)씨는 “이씨의 경우 명백히 부부에게 아픔을 준 만큼 명예훼손이 맞는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한편 모의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법학관 건물 로비에서 임신복 체험 등 임신, 육아 캠페인도 열렸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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