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의 사업조직을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로 개편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농협법 개정안이 1 년 가까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어느 때와 달리 중앙회 사업구조 개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돼 농협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미온적이던 농협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농업과 농협이 직면한 새로운 환경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인해 농민단체와 학계를 포함한 각계의 의견 차이가 크게 좁혀졌다. 어려움에 처한 농업과 농촌의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사업구조 개편이 절실하다는 인식이 농업계 전반의 동의를 얻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 새로운 원 구성으로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위원 상당수가 교체되고 주요 정당의 전당대회 등 정치일정이 이어지면서 농협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자칫 추진동력이 약화되어 농협개혁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최근 쌀값 하락과 배추를 비롯한 채소파동을 겪으며 농협의 제 역할에 대한 고민이 커진 터라 더하다.
농협중앙회의 사업구조 개편은 농업계의 숙원이다. 1990년대에 들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과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등으로 농ㆍ축산물의 수입개방 압력이 거세짐에 따라 농업도 시장 지향적인 구조로의 전환을 요구 받게 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농협이 경제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비판과 함께 농협 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그럼에도 농협의 사업구조 개편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쉽지 않았다. 개혁 당사자인 농협이 소극적이었으며, 농업에 대한 인식 차이와 농협의 역할에 대한 시각차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농업ㆍ농촌의 위기는 더욱 심화되었다. 농산물시장 개방은 더욱 확대되고 농산물 소비유형 및 유통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농업의 위기는 농협 경제사업의 위기이기도 하다. 경제사업 부문은 만성적인 적자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농축산물 유통 및 판매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신용사업도 전문성을 강화하지 않고는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장담할 수 없는 도전적인 시장환경에 직면하고 있다. 신용사업의 수익으로 농업인과 회원조합을 지원하고 경제사업의 적자를 보전하는 체제에서 농협 전체의 역량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일각에서는 아직도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10여 년간의 논의과정에서 겪어온 진통을 외면하는 일면적 견해다. 올해 안에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농협법 개정 논의 자체가 정치논리에 밀려 기약 없이 표류할 가능성이 있다. 농협중앙회 조직 내부의 불안이 장기화하는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조직의 불안정을 감수하고 어려운 결단을 내린 농협이 개혁의지를 잃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은 지금이 적기이다. 세부 사항에 대한 이해당사자 간 의견차는 좁혀진 폭에 비하면 작은 차이에 불과하다. 국회 논의과정에서 문제가 되었던 자본금 및 세금의 지원문제와 보험사 설립 관련 쟁점도, 상당한 의견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작은 입장 차이를 조정하지 못하여, 혹은 정치논리에 밀려 때를 놓친다면 오랜 염원인 농협개혁을 위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국회, 정부를 비롯한 농업계 모두가 책임 있는 자세로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농협법 개정 논의가 멈추어 있는 동안에도 우리의 농업ㆍ농촌과 농협의 위기는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노재선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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