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6일 국회 정상화 방안에 극적으로 합의한 배경에는 그 동안 쌓아온 상대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벼랑 끝에서 한발씩 양보한 여야 원내대표의 정치력이 자리잡고 있다.
당초 야5당은 청목회 입법로비 사건으로 경색된 정국을 풀 방안으로 본회의 긴급현안질문 실시를 주장했고, 한나라당은 기업형슈퍼마켓(SSM) 쌍둥이 규제법안인 유통법과 상생법의 순차처리를 조건으로 내세웠다. 청목회 관련 긴급현안질문은 한나라당이 껄끄러워 하는 사안이고, SSM 규제법 순차처리는 정부가 상생법 처리에 반대하는 상황이라 야당들이 유통법ㆍ상생법의 동시처리를 요구하며 수용하지 않았던 요구이다.
난항을 겪던 협상은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유통법을 먼저, 상생법을 나중에 통과시키는 순차처리를 하되 국무총리가 긴급현안질문에서 상생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달라’는 수정제안을 내놓으면서 실마리가 풀렸다. 이에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당초 12월2일 상생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접고 이달 25일로 처리시점을 앞당겼다. ‘예산처리 만료일인 12월2일 상생법 처리시점을 잡은 것은 야당이 요구하는 상생법을 4대강 예산안 통과와 연계하기 위한 꼼수가 숨어 있다’는 야당측 의구심을 풀어준 것이다.
협상에서 김 원내대표는 여야의 신뢰회복을 위해 “상생법 처리에 의원직을 걸겠다”고까지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나라당과 약속했던 순차처리 입장을 철회함으로써 김 원내대표에게 마음의 빚을 안고 있던 박 원내대표는 ‘10일 유통법ㆍ25일 상생법 통과’라는 순차처리 모양새를 만들면서 묵은 고민을 털어냈다. 이 과정에서 여야간 불신의 벽을 키운 SSM 규제법의 직권상정 대신, 여야간 합의처리를 우선시하며 대화의 장을 마련한 박희태 국회의장의 중재력도 한몫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여야가 국회 정상화에 합의한 데에는 파행이 계속되면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민주당은 시간이 흐를수록 청목회 사건으로 국회를 파행시킨 데 대한 부담이 커지는 만큼 출구전략을 고민하는 시점이었다. 일각에선 국회 보이콧 기간이 길어지면 4대강 예산심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권 논란 때문에 법 처리가 늦어지면 중소기업과 상인들의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고려됐을 것이다. 한나라당도 어차피 상생법을 통과해주기로 한 만큼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야당에게 국회파행의 빌미를 제공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양측이 한발씩 양보하자 국회 파행은 일사천리로 풀려나갔다. 민주노동당은 끝까지 SSM 규제법 순차처리에 반대했지만, 진보신당은 “유감이지만 그 정도면 동의한다”며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의 국가인권위원회 국정감사를 비롯해 행정안전위,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등 상임위의 예산심사 일정이 예정대로 진행됐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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