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반 동안 캐비넷에서 잠자고 있는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진전을 위한 양국 통상장관 회담이 이틀째 이어졌지만 양측은 결국 최종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물론 90%이상은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평가. 하지만 도저히 물러설 수 없는 한 두 가지가 타결의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어차피 10일 늦어도 11일까지는 타결되겠지만, 마지막 남은 ‘뜨거운 감자’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 닥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쟁점은 세 가지
쇠고기가 의제에서 배제된 상황에서 통상장관 회담은 자동차 문제로 집중됐다. 이와 관련한 미국의 요구사항 크게 세 가지. ▦2015년부터 한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에 적용될 연비(리터당 17km 이상), 배출가스(140g/km 이하) 등 환경 규제를 유예ㆍ완화해달라 ▦무한정 해줄 수 있게 되어 있는 우리나라 자동차 제작사들의 부품 관세환급(duty drawback)을 한ㆍEU FTA(5%로 상한제한) 수준으로 제한해 달라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25% 관세를 2015년부터 10년 동안 단계적으로 철폐키로 했던 종전 스케줄을 연장하거나 아예 무효화해달라 등이다.
문제는 하나
세 가지 중 첫 번째 쟁점, 즉 환경규제 부분은 한미 FTA 가 타결된 이후(2008년) 생긴 규제인 만큼 부속서 등을 통해 한국측의 양보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둘째 역시 FTA 체결시 최소한 제3국과 맺은 협정에 준하는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룰(패리티ㆍparity)을 적용하면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대놓고 거절하기 힘든 대목이다.
하지만 픽업트럭의 관세철폐 문제는 차원이 다른 사안. 협정문에 손을 대지 않고서는 요구를 들어 줄 수 없는 부분이다. 한 통상 전문가는 “FTA는 기본적으로 관세 철폐에 존재의 이유가 있다”면서 “이 때문에 관세 철폐의 기한이나 축소 폭 조정은 협정문에 손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픽업트럭 관세부분을 손을 대려면 결국 협정문을 고쳐야 하는데, 우리정부로선 이미 여러 차례 “협정문은 글자 하나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천명한 터라 미국측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9일 협상이 최종타결로 이어지지 못한 것도 결국 이 부분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왜 픽업트럭인가
미국이 한ㆍ미 FTA에서 자국으로 수입되는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 철폐기한을 10년에서 15년으로 연장 또는 관세 철폐 폐기를 요구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금융위기 위기 이후 주춤하고 있긴 하지만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판매 차량의 절반 가량이 픽업트럭이었기 때문이다. 픽업트럭은 보통 배기량이 5,000~6,000cc에 이르는 화물승용차로 안전성이 뛰어나고 오프로프 주행 가능해 미국인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자동차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픽업 트럭에 대한 미국의 애정은 상당한 수준”이라며 “이 시장을 다른 나라에 내준다는 데에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25%의 높은 관세는 유럽의 자동차 제작사들이 미국에 픽업트럭을 수출하기 시작하자 매기기 시작한 관세. 이후 유럽이 미국산 수출생닭에 25%의 보복관세를 매긴 데서 ‘치킨 텍스(chicken tax)’로도 불린다. 자동차 왕국 일본도 미국 픽업트럭 시장공략에 실패했을 만큼, 미국의 픽업트럭 사수의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이 팀장은 “유럽 일본도 뚫지 못한 시장을 한국이 FTA로 뚫은 것 자제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며 “이제 와서 한국 정부도 그것을 쉽게 포기하기는 힘들 것”일고 말했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자동차 분야는 정부 스스로 한ㆍ미 FTA의 최대 치적으로 꼽던 부분이었다”며 “그런 만큼 우리가 이번에 양보를 하는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