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G20) 체제라는 틀 안에 모였지만, 모든 국가의 생각이 같을 순 없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자국 이익이 최우선일 수밖에는 없는 상황. 사안에 따라 맞잡는 손이 달라진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9일 G20이 ▦흑자-적자국 ▦환율조작국-피해국 ▦재정긴축국-확장국 ▦대국-소국 등 7개축의 복잡한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고 분석할 정도. 이들의 공통 분모를 찾아내 ‘서울 선언’을 만들어 내는 과정도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해 보인다.
전세 역전된 미국과 중국
미국은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던 경주 재무장관회의와 달리 이번 서울 정상회의에서 상당히 수세에 몰려있다. 여전히 경상수지 수치 목표(GDP의 4% 이내)를 원하고는 있지만, 칼끝은 매우 무디어진 상태. 그 보다는 ‘양적 완화’ 조치를 이슈화하려는 중국 등 다른 나라의 공격을 어떻게 방어하느냐에 더 전력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강ㆍ온 전술을 적절히 섞어가며 미국을 어르고 달래는 모양새. “G20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를 주요 의제로 삼아야 한다”(정부 공동 내외신 브리핑)고 몰아붙이는가 하면, “미국 경제를 부양하는 것이 세계 경제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왕쥔 재정부 부부장)이라고 유화 제스쳐를 보이기도 한다. 미국의 양적 완화 책임을 물고 늘어지면서도, 자칫 위안화 절상 요구가 다시 강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목청 높이는 독일, 일본, 브라질
한 때 미국에 우호적이었던 독일은 최근 들어 오히려 중국을 두둔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미국이 중국의 환율 조작을 비난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중앙은행의 발권력 동원으로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춘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자칫 서울 정상회의에서 경상수지 수치 목표에 합의하는 경우, 경상수지 흑자국인 독일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한 결과다.
일본은 경상수지 목표제보다 환율에 더 관심이 많다. 달러 약세에 따라 극심한 엔고(高)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 ‘시장 결정적 환율제 이행’ ‘경쟁적 평가절하 자제’ 등에 합의한 경주 회의의 최대 피해국으로 평가되는 상황에서, 무질서한 환율을 정상화하기 위한 외환시장 개입은 인정돼야 한다는 국제적인 동의를 구하는 데 관심이 쏠려 있다.
‘환율 전쟁’이라는 표현을 처음 들고 나온 브라질은 이번 서울 정상회의에서 어떤 식으로든 환율 갈등이 매듭지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로 더욱 중요성이 커진 자본 유출입 규제에 대한 공조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적극 개진할 것으로 보인다.
의장국 주도권 다투는 한국과 프랑스
의장국으로서 공을 차지하고 싶은 건 당연지사. 올해 의장국인 우리나라와 내년 의장국인 프랑스 간에도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진다.
우리 정부가 경상수지 수치목표제에 강하게 집착했던 것도 이 때문. 정부 관계자는 “서울 회의가 환율 전쟁에 종지부를 찍는 역사적 회의로 기록되고 싶은 건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개발 이슈나 글로벌 금융안전망 같은 ‘코리아 이니셔티브’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프랑스도 내년 의제에 상당히 공을 들이기는 마찬가지. 표면적으로는 의장국 트로이카(전ㆍ현ㆍ후 의장국)로서 이번 정상회의에 적극 협조하는 모양새지만, 속으로는 가급적이면 주요 의제들은 내년 11월 개최 예정인 파리 정상회의에서 매듭지어지길 희망하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역시 6월 캐나다 토론토 정상회의 때 이런 태도를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프랑스는 국제금융체제 개편 등 내년에 다룰 의제 선점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상황. 한 때 G20 체제에 상당히 부정적이었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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