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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영화판의 '정의'

입력
2010.11.09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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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판에서 정의는 특별하다. 마이클 샌델의 '공동선'도, 정부가 말하는 '기회 균등'도 남의 얘기다. 나한테 유리하고, 이익이 되면 정의이고, 공정이다. 그러니 "영화인이 하나 되자"고 외치는 것 자체가 공허하다. 동료에 대한 애정이나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상대에 대한 비난과 냉소, 불만이 가득하다. 나한테 조금이라도 불리하거나 손해면 본질도, 원칙도, 기본적 상식과 잣대도, 마음대로 해석하고 바꾸는 게 다반사다. 그래 놓고는 정의와 공정을 갖다 붙인다.

나에게 유리하면 '공정'하다

조희문 영화진흥위원장이 결국 해임됐다. 직접적인 이유는 물론 독립영화제작지원 심사 개입이다. 해임사유까지 되지 않는 사안인데 정치적 공세와 여론에 밀린 과도한 징벌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는 "교통 위반에 사형판결을 내린 것"으로 비유했다. 그러나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 역시 영화판의 '정의'와 무관하지 않다.

먼저 조 위원장은 자신을 유리하게 해석하는 정의만을 고집했다. 독립적이어야 할 심사에 위원장이 개입한 것은 어떤 이유이든 명백한 잘못이다. 그러나 그는 그 본질을 외면하고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이며 비판과 해임 요구를 음모로 단정했다. 자신의 기득권이나 이익을 침해 당했거나, 당할 것을 우려한 영화인들의 집요한 흠집 내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의 과실까지 정의로운 행동으로 뒤바뀌지는 않는다.

영화판의 '정의'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곳은 영진위의 지원심사에서다. 위원장의 개입으로 논란이 된 독립영화 제작지원뿐만 아니다. 모든 지원사업에 편파와 공정성 시비가 뒤따른다. 그럴 수밖에 없다. 혜택을 소수가 볼 수밖에 없으니. 탈락한 다수는 예외 없이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심사와 선정절차를 문제 삼는다. 똑같은 상황에서 입장이 정반대 되면 어떻게 하나.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마스터스 영화 제작지원(현금 4억원, 현물 2억원)에 대한 결과를 놓고 한 노 감독이 난리다. 심사위원들이 선정한 자신의 작품을 위원회 전체회의가 부결시킨 것은 부당하다며 법정싸움까지 준비하고 있다. 심사만으로 지원결정이 끝난 것은 아니다. 위원회 의결 역시 중요한 선정 과정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심사도 하기 전에 누구 작품이 될 것이라는 소문, 심사결과 역시 그렇게 나오고 곧바로 외부에 알려진 것, 외부인사 원칙을 어긴 심사위원 위촉만으로도 얼마든지 심사결과와 다른 결정을 할 수 있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심사에 참여한 영진위 직원이다. 영화아카데미 원장인 그는 노 감독과 함께 자신의 조직인 영진위의 결정을 공공연하게 비난하면서 그것이 '정의'인 것처럼 착각한다.

사실 의 0점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 마스터스 영화 제작지원 사업은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지난해 선정된 작품 중 하나는 약속한 제작기간이 지났지만, 캐스팅도 못해 지원금 회수가 불가피해졌다. 이유는 자명하다. 오랜 공백으로 감독의 연출감각이 떨어지는 데다 심사평의 지적대로 작품의 수준에 대한 의문으로 투자가 쉽지 않다. 때문에 임권택 하명중 이창동처럼 지금도 계속 영화를 만들고 있는 마스터스가 아니면 지원의 실효성이 없다.

최소한의 업무윤리마저 저버린 영화판의 정보 유출도 심각하다. 영진위 회의나 심사내용을 거의 실시간으로 친밀한 영화인이나 단체에 보내는 영진위 위원, 심사위원도 있다. 자기편 이익을 위해 공정성 시비를 걸다 상황이 역전되자 책임을 엉뚱한 사람에게 씌우거나 자기 이익을 위해 신념을 바꾸는 것도 그들만의 '정의'다.

이념보다 돈이 갈라놓는 판

왜 이럴까. 말은 그럴 듯해도 돈, 더 정확히는 아무나 써도 되고 안 갚아도 되는, 손에 쥐어주는 제작 지원금 때문이다. 걸핏하면 불거지는 영화판의 이념대립과 갈등도 사실은 '나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계에는 좌도 우도 없다는 말은 맞다. 영화판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은 어찌 보면 영화인들을 돈에만 눈 멀게 하고, 돈으로 자기 식구만 챙겨온 정부다. 10년을 그렇게 해왔다. 이 타락한 의식과 구조를 고집하는 한 영화판의 이상한'정의'는 영원하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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