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철(52) 성공회대 교회음악과 겸임교수는 10일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그의 제자 단원들이 마침내 무대에 서는 날이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서울시가 노숙인 등 저소득층의 자존감 회복을 돕기 위해 운영해 온 자활 프로그램 ‘희망의 인문학’ 과정 가운데 지난 6월부터 합창 수업을 맡아 지도해왔다. 그는 “우리 단원들이 멋지게 부를 동요 ‘아빠 힘내세요’를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성공회대는 서울 구로ㆍ금천ㆍ영등포ㆍ강서구 등 10개 자활시설에서 온 수강생 300명으로 문학, 역사, 철학, 합창 등으로 희망의 인문학 과정을 구성했고, 그는 매주 한 차례씩 합창수업을 진행했다. 그 과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홍 교수는 첫 수업을 떠올리며 웃었다. 그는 사람의 영혼은 육체와 마찬가지로 배고프며 나에게 그 허기를 달래 줄 ‘밥’은 음악이라는 요지로 호기롭게 음악을 설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수강생 반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나머지는 ‘먹고 살기 바쁜데 무슨 음악이야’라는 표정이었던 거였다. 오선지를 그려 ‘도’부터 7음계를 설명해도 멀뚱멀뚱 쳐다볼 뿐 아무 반응이 없었고, 처음 불러 본 ‘고향의 봄’은 들을 수 없을 정도였단다. “답답하더라고요. 수업 분위기도 어수선하고…. 아예 의욕이 없어 보였어요.”
‘이래선 안되겠다’고 생각한 홍 교수는 꼭 필요한 말만 간결하게 하고, 준비한 유머를 활용하며 수업 방식을 바꿨다. 대신 노래 부르는 데 할애하는 시간을 점차 늘려 수강생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소프라노, 알토 등 파트를 나눠 ‘고향의 봄’연습도 시작했다. 직장인 아마추어 합창단 ‘음악이 있는 마을’의 상임지휘자로도 활동 중인 그는 방학기간(7~8월)에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정기공연에 수강생 전원을 초청하기도 했다.
덕분에 멜로디 따라가기 바쁘던 합창단은 파트별로 호흡을 맞춰볼 정도로 발전했다. “4주 정도 지나니까 즐기는 사람이 하나 둘 생기고, 독창으로 노래 부를 정도로 능동적으로 변했어요. 무엇보다 실의에 빠져 어두웠던 사람들이 서로 신뢰가 쌓여서 농담도 하면서 많이 웃으니까 그게 참 보기 좋더라고요. 10월 초 인문학 과정이 끝날 무렵에는 ‘계속 남아서 우리하고 노래하고 살아요’라며 간식을 챙겨주거나 자녀 음악 교육에 대해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도 생겼어요.”
홍 교수와 희망의 인문학 합창단원들은 10일 오후 4시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서울대성당에서 열리는 수료식 피날레를 합창으로 장식한다. 준비한 곡은 ‘고향의 봄’, ‘아빠 힘내세요’ 등 네 곡. 그는 “짧은 시간 선생 노릇을 했지만 저야말로 많이 배웠다”며 “10일이 생애 가장 뿌듯한 졸업식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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