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불법사찰 관련 증거인멸 과정에서 사용됐던 대포폰을 개설한 청와대 최모 행정관이 증거인멸 시점 이후에 이 대포폰으로 진경락 전 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과 통화한 사실이 8일 밝혀졌다. 진 전 과장은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인물이다. 최 행정관이 증거인멸에 관여했다고 볼 만한 정황이 또 드러난 셈이어서, 검찰 수사결과를 둘러싼 의문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 사건 수사를 지휘한 신경식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이날 "최 행정관이 차명폰으로 진 전 과장과도 통화한 기록이 있어 이 부분을 조사했다"며 "통화 시점은 그가 지원관실 장모 주무관에게 차명폰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은 이후"라고 말했다. 최 행정관은 지난 7월7일 지원관실 컴퓨터 하드디스크 영구삭제를 의뢰하기 위해 경기 수원시의 한 IT업체로 향하던 장씨에게 대포폰을 빌려줬으며, 당일 저녁 돌려받아 불과 한 달 만인 8월 초 해지했다. 장씨가 직속 상사였던 진 전 과장의 지시에 따라 증거를 인멸했고, 이 과정에서 최 행정관이 건넨 대포폰을 사용한 점 등을 고려하면, 당시 최 행정관과 진 전 과장은 '증거인멸 이후'의 상황에 대해 통화했을 개연성이 높다.
검찰은 그러나 진 전 과장과 장씨만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했을 뿐, 최 행정관에 대해선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신 차장은 "최 행정관은 진 전 과장과 행정고시 동기라 친분관계 때문에 통화했다고 진술했고, 진 전 과장도 '기억이 없다'고 부인하거나 묵비권 행사로 일관했다"며 "이 정도만으로 최 행정관이 (증거인멸을) 직접 지시했다고 볼 순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청와대의 관련성 여부를 캐기 위해 의문스런 부분을 모두 조사했으나,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입증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청와대 대포폰' 파문의 당사자인 최 행정관이 증거인멸 과정의 시작과 끝, 모두에 등장한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증거인멸이 행해지기 직전, 그는 대포폰을 개설해 실무자인 장씨에게 건넸다. 증거인멸 이후에는 이를 지시했던 진 전 과장과 대포폰으로 통화했다. 그러나 현재 청와대와 검찰은 당사자들의 해명에만 기대어 이 모든 게 "친분관계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게다가 검찰은 최 행정관을 '제3의 장소'에서 불과 6시간 정도만 조사하고 말았다. 검찰 안팎에서 "이 정도의 정황증거가 있다면, 최 행정관의 컴퓨터 사용기록 등 보다 철저한 주변 조사를 해 본 뒤 기소해서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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