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8일 "북한의 후계체제 구축이 대단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현 장관은 이날 한국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9∙28 3차 노동당 대표자회 이후 40여일 동안 보여준 북한의 후계자 김정은의 움직임에 대해 이같이 분석했다.
현 장관은 이어 "천안함 사태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반성이 북핵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은 아니다"며 "천안함 사태와 별개로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행동에 나선다면 6자회담 재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통일세 논의와 관련, "통일에 대비해 세금, 기금 등 다양한 재원 조달 방안이 있지만 어느 방안이라도 서민층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명록 북한 국방위 제1부위원장 장의위원회 명단에 후계자 김정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다음으로 호명돼 권력서열 2위로 급상승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9ㆍ28 당 대표자회 결과를 보면 우리가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북한의 후계체제 구축이 파격적으로 그리고 전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이후 전개되는 상황도 후계구도를 공고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지요. 북한이 언제쯤 김정은 체제를 완성할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김정은이 사실상 2인자 자리에 올랐다고 보십니까.
"2인자다 3인자다 그런 서열에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습니다. 북한체제의 특성상 여섯 번째 발표했다고 해서 실권을 쥔 정도가 6위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김정은 후계체제 공식화 이후 북한이 어느 쪽으로 갈 것인지에 대해 엇갈린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개혁ㆍ개방의 길로 나아갈 것이란 긍정적 전망도 있으나, 오히려 선군(先軍) 정치를 내세워 강경책으로 선회할 것이란 우려도 있는데요.
"북한은 현재 과도기에 있기 때문에 향후 행보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북한이 폐쇄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고 과거처럼 핵실험 등 강경 일변도의 정책을 지속한다면 어두운 미래가 닥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합니다. 북한이 고립을 자처하고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할 경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우려와 동시에 회의가 듭니다. 북한은 하루빨리 국제사회에 편입해 주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
-서울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일부에서는 G20 회의 이후 남북관계의 긍정적 변화를 점치기도 하는데요.
"전적으로 북한에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북한이 진심으로 남북관계를 재정립할 의지가 있는가, 아니면 대결ㆍ갈등 구도를 지속할 것인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입니다. 북한은 천안함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런 진정성이 담긴 노력이 이어진다면 남북관계는 자연스레 좋아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당분간 경색 국면은 불가피합니다."
-그 동안 우리 정부는 천안함 사태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촉구하는 한편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의 진상규명, 재발방지 노력, 신변안전 보장 등을 요구했습니다. 이 같은 조건들은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요.
"최근 북한이 일부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눈에 띌 만한 태도 변화를 보였다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북한이 정말 대화를 원하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합니다. 가령 북한은 얼마 전 국방위 검열단 명의로 천안함 진상공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남측 인터넷에서 떠도는, 근거 없는 의혹들의 종합판이지요. 이런 점들을 보면 북한이 과연 천안함 사태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갖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높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는데요.
"정상회담이 남북관계가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중요한 수단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정상회담은 남북간에 중요한 현안을 해결하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즉 현재 남북관계의 기본적 문제인 천안함 사태와 비핵화 해결의 단초를 제공해야 하지요. 정상회담이 이런 이슈들을 서로 공유하고 확인하는 그런 기회여야 하는데 현재로선 이에 걸맞은 여건, 환경이 조성됐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일각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에 대비한 물밑 협상이 진행될 것이란 추측이 나옵니다.
"소위 물밑에서, 비공개적으로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유가 어찌됐든 남북관계가 대결 구도에 갇히면서 통일부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는데요.
"기본적으로 겸허히 수용합니다. 다만 통일부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느냐 따라 관점을 달리할 수 있습니다. 통일부가 북한과 회담이나 하고 경제 지원만 제공하는 부처라고 생▤磯摸?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지요. 하지만 통일부는 전략적 틀에서 남북관계 전반을 관리하는 부서입니다. 다소 시간은 걸릴지 몰라도 남북관계가 본질적으로 변해야 건강한 관계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
-북한은 금강산관광 재개와 대규모 식량지원을 바라고 있습니다. 유연하게 대처할 의향은 없습니까.
"최근 남북 적십자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잇따라 가졌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인도적 사안을 협의하는 자리에서도 금강산관광 재개와 식량 지원을 요구했습니다. 적절치 못한 태도입니다. 금강산관광 재개는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맞바꿀 수 있는 카드가 아닙니다. 정부가 관광재개의 조건으로 내건 신변안전 보장 등은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한 가장 기본적 조치들입니다. 북한은 이 문제를 논의하는 와중에 오히려 금강산관광 지구 내 시설을 동결하고 몰수했습니다. 남측을 향해 문제를 풀라고 요구하면서 자신들 스스로 문제를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북한이 적십자 회담에서 요구한 쌀 50만톤과 비료 30만톤은 이산가족 문제 해결 위한 지원 규모와 맞지 않는 정치적 사안입니다."
-하지만 식량 지원 문제에서는 여당 일부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요.
"관건은 분배 투명성입니다. 과거 우리가 대규모 식량지원을 했음에도 어떻게 분배됐는지가 모호했던 탓에 군량미 전용 얘기가 나온 것입니다. 북한의 전체적인 식량 부족분, 수급 상황 등을 보면 그럴 개연성이 충분합니다. 다만 정부는 순수 인도주의 차원의 대북 지원은 계속할 것입니다. 5ㆍ24 대북제재 조치 이후에도 민간 부문에서 지원한 액수만 120억원 어치가 넘습니다. 앞으로도 정치ㆍ안보 상황과 무관하게 인도적 대북 지원은 계속 허용될 것이란 점은 약속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지요.
"북한은 북핵 6자회담에 참여하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면서도 유엔에서 핵개발을 계속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이 같은 북한의 태도로 볼 때 3차 핵실험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정보 당국이 판단할 때 당장 3차 핵실험 징후는 상당히 낮은 편입니다."
-북핵 6자회담은 언제쯤 다시 열릴 수 있을까요.
"더 이상 회담을 위한 회담, 대화를 위한 대화가 돼서는 안됩니다. 북한의 확실한 비핵화 의지, 비핵화로 진전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회담 재개 시기를 단정하기는 곤란합니다. 한 발짝 내딛다가 두 발짝 후퇴하는 식의 회담으로는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기 어렵습니다. "
-얼마 전 "이명박정부 임기 내 통일세 도입은 가능하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습니다.
"통일부도 '통일재원 논의 추진단'을 만들었습니다. 정부 부처간 논의 및 쌍방향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내년 상반기 중 일정한 형식을 갖춘 방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통일재원이 필요하다는 원칙론에는 대다수 국민이 동의합니다. 그러나 세금 형태라면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많은데요.
"세금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기금 등 다른 방식으로도 자금을 조달할 수 있습니다. 방향을 미리 정해 놓지 않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서민계층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도출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천안함 사태와 북한 후계체제 문제가 겹치면서 남북관계는 악화하는 반면 북중관계는 더욱 밀착되고 있는데요.
"일부에서 그런 우려의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을 잘 압니다. 그러나 북중관계와 남북관계를 단순히 제로섬 관계로 판단할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북한의 바람직한 방향은 개방과 비핵화인데 그것을 위해 북한과 중국이 가까워진다면 마냥 색안경을 끼고 볼 사안은 아닙니다. 좀더 큰 틀에서 북중관계를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달 독일통일 20주년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한반도 통일에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았을 텐데요.
"우리의 경우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통일 논의 열기가 다소 떨어져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독일 통일의 부작용을 보면서 부담감이 높아진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번에 목도한 것은 그런 어려움을 극복한 독일의 저력입니다. 독일인들은 통일 독일의 비전을 갖고 정체성을 완성해가고 있습니다. 통일이 주는 선물은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비록 우리는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평화-경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철저한 준비만이 통일의 시간을 앞당기고 어려움을 빨리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약력
▦1954년 제주 출생 ▦1978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90년 미국 UCLA 국제정
치학 박사 ▦1995~2009년 고려대 정외과 교수 ▦2005년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2008년 제17
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
대담=김광덕 정치부장
정리=김이삭기자 hi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