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스님들이 지고 다니는 걸망에는 뭐가 들어있나요?" 스님들이 등에 지고 다니는 자루 모양의 커다란 주머니를 바랑 또는 걸망이라고 한다. 걸망은 한마디로 스님들의 살림 밑천이다. 걸망 하나에 한 스님의 살림살이가 다 들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명 승복에 흰 고무신, 밀짚모자와 등에 짊어진 단출한 걸망 하나, 우리나라 산승(山僧)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다. 요즘같이 날이 쌀쌀해지면 흰 고무신은 검정 털신으로 갈아 신고 밀짚 모자도 회색 털모자로 바꿔 쓴다. 이렇게 걸망을 맨 스님은 길을 떠난 스님들의 상징적인 모습이다.
산사의 선방(禪房)에는 머물러 사는 스님들이 앉는 청산(靑山)의 자리가 있고, 한 두 철 살고 가는 백운(白雲)의 자리가 있다. 청산이라고 해도 조금 더 오래 머문다는 것뿐이지 떠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백운이건 청산이건 걸망을 챙기면 떠나는 것이다. 스님들도 사람인지라 한 철 3개월이라도 눌러 살다 보면 옷가지며 자질구레한 짐이 생긴다. 어지간히 관리하지 않으면 늘어나는 짐을 감당할 수 없을 때도 있다. 한 철 살림이 이러하니 몇 년을 눌러 살다 보면 짐에 붙들려 떠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든 때가 되어 떠나게 되면 걸망 하나로 짐을 정리한다. 꼭 필요한 계절 옷 몇 벌이야 인연 닿는 곳에 맡겨놓고 철 따라 찾아 입겠지만 나머지 짐은 미련을 버린다. 나누어 줄만한 것은 나누어 주고 버릴 것은 버린다.
얼마간이건 살다가 떠날 때, 걸망 하나 가볍게 매고 떠나는 모습이 가장 승려답고 아름답다. 짧지 않은 시간 한 곳에 머물러 그런지, 같은 출가 수행자이지만 걸망을 맨 스님들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설레곤 한다. 묵은 둥지를 버리고 날아가는 새처럼, 아무것도 지니지 않았지만 두려움이 없는 자유로운 정신이 그 곳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무소유(無所有)의 진정한 뜻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필요한 소유물 외에는 소유하지 않도록 하고, 또 필요해서 소유했다고 해도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는 것이 무소유의 정신이다.
사회와 밀착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에 사는 스님들은 일반 사회인들만큼이나 소유물이 많아졌다. 노트북과 휴대폰은 물론이고 건강을 위한 자전거며 운동기구 등 갖가지 현대문명의 편리한 생산품을 대부분 이용하고 또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스님들이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을 그리 비난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다만 오래도록 살던 곳이라도 떠나야 할 때 떠나지 못하고, 귀하게 얻은 물건이라도 버려야 할 때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것을 비난 할 뿐이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스님들의 걸망을 열어보면 갈아입을 옷가지와 세면도구, 그리고 즐겨 읽는 경전 한 두 권이 전부다.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물건들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다. 이 것 밖에 또 무엇이 필요할 것인가?
20여 년 산사에서 밥을 얻어먹으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 세상 무엇이든 잠시 빌려 쓰고 가는 것이지 소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몸과 마음을 포함해서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 빌려 쓰는 것일 뿐이다.
아까워서 너무 아까워서 나도 쓰지 못하고 남들도 쓰지 못하게 했던 당신 인생의 걸망 속 귀한 재물이며 물건들이 당신의 눈길이 사라진 곳에서 쓰레기처럼 취급되기도 합니다. 지금 바로 당신 인생의 걸망 속을 한 번 살펴보기 바랍니다.
주경 서산 부석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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